“안식일에 목숨을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루카 6,9)
(루카 6,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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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인류 해방을 위해 예루살렘을 향한 여정을 이어가십니다. 적대자들의 반대와 저항도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어느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고 계실 때, 마침 그곳에 오른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습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그분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습니다.”(6,7)
사실 유다교 법전에도 안식일에는 목숨을 잃을 염려가 없는 병자를 치료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되어 있었습니다(미슈나 샵바트 7장).
사실 손이 오그라든 사람은 몸이 불편해 하고싶은 것을 할 수 없었고 제 구실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위축되고 어쩌면 열등감과 수치심을 느끼며 그 모든 것을 감추고 싶어 했겠지요. 그런 그를 예수님께서는 ‘생명과 해방의 무대’ 한복판으로 불러내십니다.
사랑이신 그분께서는 우리가 어떤 상태에 있든지 사랑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어,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어주시고 아픔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선을 이루고 목숨을 구하는 일은 시간과 장소나 규정에 매이는 것이 아님을 명백히 가르치십니다.
생명은 죽음의 문턱에서만이 아니라, 손이 오그라든 것처럼 사소해 보이는 모든 경우에도 고귀하다는 가르침이지요.
그렇게 그의 아픔과 부자유가 예수님 앞에서 ‘있는 그대로’ 드러남으로써 해방과 되살림의 선물로 바뀌게 됩니다.
이렇듯 예수님의 치유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넓은 사랑에서 우러나온 것이었지요. 그분의 사랑은 그렇게 늘 ‘한걸음 더 나아가는 사랑’이었습니다.
또한 인간의 생명은 그것이 제아무리 사소한 것처럼 보인다 하여도, 늘 ‘끝없고 멈춤 없는 사랑’으로 돌봄을 받아야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제한을 두지 않고 인간성을 회복하고 하느님의 선이 모든 이 안에서 되살아나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모두의 으뜸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안에 사는 사람들은 최소한이 아닌 한도 끝도 없는 사랑을 하도록 불린 사람들이 아닐까요?
오늘도 우리가 정한 틀과 기준 때문에 영혼이 짓눌리고, 생명의 호흡을 제대로 이어가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한걸음 더 나아가는 사랑’으로 모두의 자유와 회복과 생명을 위해 투신해야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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