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파냐의 바르셀로나(Barcelona) 근교 베르두(Verdu)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성 베드로 클라베르(Petrus Claver)는 바르셀로나 대학교에서 공부한 다음 1602년 8월 7일 예수회에 입회하여 1604년까지 타라고나(Tarragona)에서 수련을 받았다.
그는 마요르카(Mallorca) 섬의 몬테시온 예수회 대학에서 1608년까지 철학을 공부하면서 같은 예수회원인 성 알폰수스 로드리게스(Alfonsus Rodriguez, 10월 30일) 수사를 만나 그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성 로드리게스 수사는 그에게 신대륙으로 가서 선교하라고 권고하였다. 그래서 그는 선교사가 되려는 소망을 품게 되었다.
1610년 그는 관구장의 지시로 다른 3명의 예수회원들과 함께 콜롬비아 카르타헤나(Cartagena) 항에 도착하였다. 그는 1612년부터 1615년까지 콜롬비아의 수도인 보고타(Bogota)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1616년 카르타헤나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당시 콜롬비아는 에스파냐의 식민지였고, 카르타헤나는 노예 매매의 중심지였으므로 성 클라베르는 알폰소 데 산도발(Alfonso de Sandoval) 신부와 함께 콜롬비아 인디오들의 처참한 상황을 개선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는 서아프리카에서 끌려온 노예들이 집단 수용되는 지역에서 주로 활동하면서 음식물과 의약품을 공급하였고, 정기적으로 수용 막사를 방문하여 나병에 걸린 노예들을 돌보아 주면서 그들의 벗이 되었다.
성 클라베르는 40영 년 동안 흑인 노예들을 위하여 헌신하였는데, 그가 생전에 세례를 준 흑인 노예만도 3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는 또한 하루 종일 노예들을 방문하여 고해성사를 주었고, 카르타헤나의 수많은 흑인 노예들이 그의 영적 자녀가 될 정도로 전 생애를 흑인 노예들을 위해서 살았다.
그는 스스로 엄격한 생활을 실천하였고, 살아 있는 동안에 이미 초자연적 은혜를 받아 예언도 하였고 또 기적하는 능력도 있었으며, 사람들의 마음을 읽는 힘도 매우 강하였다.
그는 1650년에 전염병에 걸렸다가 곧 회복되었으나, 세상을 떠나기 전 4년 동안 누워서 생활해야 했다. 그는 1654년 9월 8일 카르타헤나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는 1851년 교황 비오 9세(Pius IX)에 의해 복자품에 오른 뒤, 1888년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시성되었다.
교황 레오 13세는 1896년에 성 베드로 클라베르를 흑인 노예들을 대상으로 선교 활동을 하는 선교사들의 수호 성인으로 선포하였다. 현재 그는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특히 콜롬비아 선교의 수호성인이며 흑인의 사도로 불린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마태 6,5)
(루카 6,1-5)
♣ 사람을 섬기는 사랑의 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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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학자들 및 바리사이들의 예수님에 대한 적대감이 점차 고조되어갑니다. 유다 종교 당국자들은 예수님의 활동을 주시하면서 책을 잡고 무력화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태도에도 당신의 계획을 수행하시며 인류 구원을 향한 발걸음을 이어가십니다.
따라서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유다인들에게는 그들이 하느님의 백성임을 알려 주는 표지였지요.
유다인들은 안식일에 관한 율법을 준수하기 위하여 엄격하고 세부적인 율법들을 만들어 노동과 비슷한 어떤 활동도 금지했습니다.
이에 대해 바리사이들은 “당신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오?”(6,2) 하며 따집니다.
왜냐하면 율법 규정에 따르면 밀 이삭은 추수의 한 형태였고, 이것은 안식일을 더럽히는 스물아홉 가지의 중요한 노동 형태 중의 하나로 여겨졌기 때문이었습니다.
바리사이들이 제자들에게 시비를 건 것은 실제로는 예수님께 대한 경고였습니다.
이로써 인간의 선익이 실정법보다 우위에 있고, 생존권이 그 어떤 법률보다 위에 있음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하느님의 질서를 따르는 세상의 모든 제도와 구조, 법과 관습은 늘 인간을 섬기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하느님의 법은 사랑의 법이요 율법의 근본정신은 사랑이며 그 목적은 영혼구원 외에 다른 것일 수 없지요.
하느님의 질서를 따르는 참다운 법과 제도의 기준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신’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안식일법뿐 아니라, 모든 율법의 주인이며 세상 모든 법의 기준이십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와 교회 공동체 안의 모든 제도와 체제, 법률이 서로를 섬기는 사랑의 도구가 되도록 해야겠지요.
인간을 인간답게 하기 위한 법과 질서를 바로 세우는 것은 법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달린 문제입니다.
또한 우리 자신부터 사랑의 질서를 위한 사랑의 사람이 되도록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물도록 힘써야겠지요.
나아가 각자의 인격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고유한 처지에서 자유롭게 복음을 살도록 서로 도와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야 할 법은 인간을 살리고 인간의 인격을 존중하며 인간을 섬기는 ‘사랑의 법’, ‘성령의 법’ 외에 다른 것일 수 없습니다.
인간을 변두리로 내몰고, 인간을 도구화하며 비인간화를 부추기는 불의한 온갖 법과 제도에 저항하고 그것을 폐기하는 노력도 함께 기울였으면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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