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7년 10월 14일 가해 연중 제27주간 토요일(성 갈리스토 1세 교황 순교자)

dariaofs 2017. 10. 14. 04:29

 

 

성 칼리스투스(또는 갈리스토)는 로마(Roma)의 트라스테베레 태생인 로마인이었으나 카르포포루스의 노예로서 회계 일을 맡고 있었는데, 그가 돈을 잃어버리자 도망하였다가 포르토에서 체포되었다. 이때 그는 중노동형을 선고받았다.

 

여기서 석방된 후에 그는 또 시나고가에서 싸우다가 다시 체포되어, 이번에는 사르데냐(Sardegna) 섬의 광산에서 일하는 중노동형을 받았다. 그는 황제 콤모두스의 아내 마르치아의 요청으로 다른 죄수들과 함께 또 석방되었고, 노예에서도 석방되었다.

199년경에 그는 부제가 되었으며, 아피아 가도(Via Appia)의 묘지들을 관리하는 책임을 맡았고, 이때 그는 교황 제피리누스(Zephyrinus)의 친구이자 고문관이 되었다.

 

그는 217년에 제피리누스를 승계하여 교황이 되었으나, 교황직에 가장 유력시되던 히폴리투스의 심한 반발을 받았다.

 

그들은 교리적으로 또 규율적인 입장에서 교황을 공격하여 쉽사리 사그라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불과 몇 년 후 그가 운명함으로써 이 싸움이 끝났다.

 

4세기경부터 그는 순교자로 공경을 받았는데, 그 당시에는 박해가 없었지만 아마도 폭도들에 의하여 살해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루카 11,28) 

 


(루카 11,27-28)

말씀을 듣고 지키는 행복한 사람

 

예수님께서는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신 다음 군중들에게 말씀을 선포하고 계셨습니다.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던 어떤 여자가 목소리를 높여,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11,27) 하고 말합니다.

 

모태와 가슴은 ‘어머니’를 가리키는 히브리어식 표현입니다. 그 여자는 예수님의 사랑의 행동과 말씀에 감동하여 그분의 어머니를 칭송한 것입니다.

그 여자가 목소리를 높여 말씀드렸다는 것은 칭송하고자 하는 그 여인의 간절한 마음과 반드시 예수님께 그런 마음을 전달하고자 하는 절박감을 표현한 것입니다.

 

이 여자에게는 선을 향한 갈망과 사랑을 향한 열정과 고백의 정신이 있었던 것이지요. 그

 

는 예수님을 통하여 사람들 앞에 펼쳐진 그 놀라운 하느님 사랑의 업적에 경탄하고, 그 경탄을 공유하기 위하여 사람들에게 선포한 것입니다.

사랑은 사랑이 아니고서는 품을 수도 낳을 수 없지 않습니까? 성모님이 칭송을 받으신 것은 당신 아들 예수님이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성공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예수님, 곧 사랑을 잉태하고 낳으셨기에 칭송을 받은 것이지요. 그 여자의 성모님에 대한 칭송은 곧 사랑의 뿌리이신 하느님께 대한 찬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덧붙여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11,28)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말씀을 ‘듣고’ ‘지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통해 사랑의 역동성과 사랑 실천의 항구함에 대해 강조하신 것입니다. 영성생활은 사랑이라는 관념에 대한 이해의 문제가 아니라는 말씀입이지요.

“말씀을 듣고 지킨다”는 것은 사랑의 존재가 되고 그 사랑을 살기 위해 지속적으로 사랑의 원천인 말씀으로 돌아가며, 마음에 새기고, 말씀을 열정적으로 항구히 살아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항구한 마음으로 사랑의 말씀을 끊임없이 듣고, 지속적으로 실천하는 사람이 행복하다는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세상이 아닌 하느님께로 향하는 것을 말합니다. 삶의 방향을 그분께 돌려 그분을 받아들이는 것이 말씀의 경청입니다.

 

말씀을 들을 때 우리는 온 마음을 다하여 경청해야 하고, 영혼 저 깊이까지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말씀을 소리로 들어 흘려버리고, 내 영혼의 세포에 새기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말씀을 지킨다는 것은 내 영혼에 새겨진 하느님의 진리와 지혜, 사랑과 선, 정의와 생명의 강이 세상과 동료 인간을 향해 흘러가도록 나를 도구로 내놓는 것을 말합니다.

 

말씀을 들어 새기고만 있다면 오히려 나의 좁은 울타리 안에 하느님을 가둬버리고 내 것으로 삼는 어리석음을 범할 것입니다. 그것은 거짓 영성주의요 자기만족적인 헛된 신앙에 지나지 않습니다.

오늘도 하느님을 향한 타는 목마름으로 사랑의 말씀을 받아들여 내 영혼의 세포에 새기고,

 

그 말씀이 생명과 사랑의 강이 되어 어둠에 젖은 이 사회 깊숙한 곳까지 흘러가도록 온 몸으로 실행하는 행복한 우리이길 기도합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