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7년 10월 13일 가해 연중 제27주간 금요일

dariaofs 2017. 10. 13. 05:32

 

강론   :   (루카 11,15-26)

 

<예수님과 베엘제불>

 

“그러나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은, ‘저자는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하고 말하였다.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을 시험하느라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그분께 요구하기도 하였다(루카 11,15-16).”

지금 여기에 나오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권능’을 안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보통 사람’으로만 생각하는 자들입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마귀들을 쫓아낼 수 없다.

그러니 당신이 마귀들을 쫓아낸 것은 베엘제불의 힘을 빌렸기 때문일 것이다.

혹시라도 만일에 하느님의 힘으로 마귀들을 쫓아낸 것이라면,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 어떤 표징을 우리에게 보여 주어라.”가

그들이 한 말의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말을 논리적으로 반박하십니다.

“어느 나라든지 서로 갈라서면 망하고 집들도 무너진다.

사탄도 서로 갈라서면 그의 나라가 어떻게 버티어 내겠느냐?(루카 11,17-18)”

예수님께서 마귀들을 쫓아내신 일은, 그것들을 지옥으로 쫓아내신 일이고,

그것들의 세력을 약화시킨 일입니다.

만일에 마귀 우두머리가 자기의 힘을 예수님께 빌려 주었다면,

그것은 자기들을 멸망시키라고 빌려 준 것이 되고,

마귀 우두머리가 마귀들의 적이 되는 일입니다.

따라서 그것은 논리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만일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면,

너희의 아들들은 누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는 말이냐?

그러니 바로 그들이 너희의 재판관이 될 것이다(루카 11,19).”

이 말씀은, 마귀들을 쫓아내는 일은 하느님의 힘으로만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보통 사람’으로만 생각한다고 해도,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힘으로

마귀들을 쫓아내신다는 것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유대교에도 구마자들이 있었고, 그들은 하느님께 기도하면서

하느님의 힘으로 마귀들을 쫓아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권능으로 마귀들을 쫓아내셨습니다.)

‘보통 사람’일 뿐인 그들이 하느님의 힘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 사실이니,

누구든지 마귀들을 쫓아낼 때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릴 필요가 없다는 것도

명백한 사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그들의 너희의 재판관이 될 것이다.” 라는 말씀은,

“유대교 구마자들이 하느님의 힘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일은,

너희의 말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이다.” 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루카 11,20).”

(이 말씀에서 ‘쫓아내는 것이면’은 ‘쫓아내는 것이니’로 바꿔야 합니다.)

‘하느님의 손가락’은 하느님의 권능을 뜻하는 말입니다.

지금 이 말씀은, “내가 나의 권한과 권능을 증명하기 위해서

따로 어떤 표징을 보여 줄 필요가 없다.

마귀들을 쫓아내는 일 자체가 표징이기 때문이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것이면서 동시에 당신의 것이신

신적 권능으로 마귀들을 쫓아내신 일은,

마귀들의 멸망이 시작되었음을 나타내는 일이고,

또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사람들 가운데에서 시작되었음을 나타내는 일입니다.

따라서 마귀들이 예수님의 명령에 복종하면서 쫓겨나는 일 자체가

하느님 나라의 표징이 되고,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드러내는 표징이 되는 것입니다.

 

“힘센 자가 완전히 무장하고 자기 저택을 지키면 그의 재산은 안전하다.

그러나 더 힘센 자가 덤벼들어 그를 이기면, 그자는 그가 의지하던 무장을 빼앗고

저희끼리 전리품을 나눈다(루카 11,21-22).”

이 말씀에서 ‘힘센 자’는 마귀들을 뜻하고, ‘더 힘센 자’는 예수님을 뜻합니다.

‘전리품’은 마귀들이 쫓겨난 후에 되찾게 되는 평화, 안식, 행복 등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시기 전에는 마귀들이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그것들을 쫓아내심으로써,

그것들의 세력은 무력화되었고, 그것들은 지금 멸망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다(루카 11,23).”

이 말씀은, 예수님과 마귀들의 싸움에 중립이란 없다는 뜻입니다.

예수님 편에 서지 않는 자는

구세주이신 예수님께서 주시는 구원을 받지 않겠다고 하는 자입니다.

그런 사람은 자기가 구원을 받지 않음으로써 구원받지 못하게 됩니다.

(구원받지 못하는 것은 마귀들과 함께 멸망당하는 것입니다.)

적극적으로 마귀들 편에 선 자들은 아니지만,

예수님께서 그것들을 쫓아내신 일에 대해서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서 한 일이라고 말한 자들도,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반대한 자들이고,

그래서 마귀들을 이롭게 한 자들이기 때문에 사실상 마귀들 편에 선 자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마귀들의 싸움의 승패는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예수님 편에 서는 것은 승리자 편에 서는 것입니다.

반대로 예수님 편에 서지 않는 것은 패배자 편에 서는 일이 됩니다.

패배자 편에 서는 자는 패배자들이 멸망을 당할 때 함께 멸망당할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들이 자초한 일이니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 말씀에서, 헤로데가 세례자 요한을 죽일 때의 상황이 연상됩니다.

헤로디아의 딸이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요구하고,

그래서 헤로데가 그 요구대로 요한을 죽이라고 명령할 때,

그 자리에는 고관들과 무관들과 갈릴래아의 유지들이 있었습니다(마르 6,21).

그들 가운데에는 헤로데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고,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텐데, 반대하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헤로데가 무서워서 아무 말도 못한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고,

자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구경만 한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어떻든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은, 자기들 눈앞에서 벌어지는 악행에 대해서

침묵을 지킴으로써 모두 다 그 살인 사건의 공범이 되었습니다.

예수님 편에(선의 편에) 서지 않는 자는 악의 편에 서는 자이고,

악의 세력을 지배하고 있는 마귀들 편에 서는 자입니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 나오는 사제와 레위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초주검이 되어서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서도 그냥 지나가 버린 그들은,

강도들과 한 편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사실상 강도들과 공범이 된 것과 같습니다.

사람을 살려야 할 때 살리지 않는 것은 죽이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전주교구신풍성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