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7년 10월 17일 가해 연중 제28주간 화요일(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dariaofs 2017. 10. 17. 05:22

 

 

 

 

초창기의 교부이자 순교자로 일명 ‘테오포로스’(Theophoros, bearer of God)라고도 불리는 성 이냐시오의 생애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아마도 그는 시리아 출신인 듯하며, 사도 성 요한(Joannes, 12월 27일)의 제자였음이 분명하고 개종자이다. 그는 사도 베드로(Petrus)에 의하여 안티오키아 교회의 제2대 혹은 제3대 주교로 임명되어 축성되었다.

전설에 의하면 성 이냐시오는 40년 동안 교회를 다스리다가 트라야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에 체포되어 로마(Roma)로 이송되었다. 그를 호송하던 배는 소아시아 연안을 거쳐 그리스를 통과하여 마침내 로마에 당도하였다.

 

그의 배가 정박하는 곳마다 그리스도인들의 환영을 받았으나 호송 책임자는 그를 아주 잔인하게 대하였다고 한다. 그는 그 당시 어느 공식 경기의 마지막 날인 12월 20일 로마의 원형 극장에서 사자의 밥이 되어 장렬하게 순교하였다.

그는 로마로 끌려오는 동안에 여러 통의 편지를 썼고, 스미르나(Smyrna, 오늘날 터키의 이즈미르, Izmir)에 잠시 머무는 동안에서 성 폴리카르푸스(Polycarpus, 2월 23일)에게도 서한을 보내어 그리스도교 신앙을 보전하라고 권고하였다.

 

또 교회, 결혼, 삼위일체, 강생, 구속 그리고 성체성사에 관한 그의 교육적인 편지들은 초기 그리스도교 저서 가운데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역사적 문헌들이다.

 

강론   :   (루카 11,37-41)

 

<신앙생활>

 

“정녕 너희 바리사이들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너희의 속은 탐욕과 사악으로 가득하다.

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분께서 속도 만들지 않으셨느냐?

속에 담긴 것으로 자선을 베풀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루카 11,39-41).”

 

이 말씀은, 바리사이들의 위선을 꾸짖으시는 말씀이기도 하고,

하느님 앞에서 깨끗한 사람이 되는 방법을 가르쳐 주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이라는 말씀은,

바리사이들의 정결 예식을 가리키는 말씀인데,

뜻으로는 ‘겉만’ 깨끗이 하는 위선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너희의 속은 탐욕과 사악으로 가득하다.” 라는 말씀은,

겉모습과는 다르게 속마음은 추악하고 불결한 욕심과 이기심으로 가득 차 있는

위선자들을 꾸짖으시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깨끗하다.’ 라는 말을

‘의롭다.’, 또는 ‘거룩하다.’로 바꿔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위선자들은 겉으로는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보이지만,

속은 의롭지도 않고 거룩하지도 않은 자들입니다.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겉으로만 의롭고 거룩한 척 하는 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설교에서 그런 위선자들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에게서 상을 받지 못한다(마태 6,1).”

이 말씀에서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라는 말은,

‘사람들에게만 보이려고’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는 ‘그들 앞에서’를 ‘그들 앞에서만’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어떻든 위선자들은 사람들에게서 칭찬을 받는 것만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 말은, 그들은 하느님의 심판을 의식하지도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면서 겉으로만 깨끗한 척, 의로운 척, 거룩한 척 합니다.

“그들이 하는 일이란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성구갑을 넓게 만들고 옷자락 술을 길게 늘인다(마태 23,5).”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속을 모르고, 겉모습만으로 판단할 때가 많아서,

위선자를 보아도 그 사람이 위선자라는 것을 모르고,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으로 그 사람이 정말로 깨끗하고, 의롭고,

거룩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사람의 속을 꿰뚫어보시는 분입니다.

“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분께서 속도 만들지 않으셨느냐?” 라는 말씀은,

하느님은 겉과 속을 모두 보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겉과 속이 모두 깨끗해야 하고, 의로워야 하고, 거룩해야 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속이 깨끗하고 의롭고 거룩하다고 해서

겉으로는 아무렇게나 행동해도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겉과 속이 똑같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내적으로도, 또 외적으로도 경건하게 살아야 합니다.

사실 정말로 내적으로 거룩한 사람은 그 거룩함이 저절로 드러나는 법입니다.

(일부러 드러내지 않아도, 또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하지 않아도...)

 

“속에 담긴 것으로 자선을 베풀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 라는 말씀은,

속으로나 겉으로나 깨끗한(의롭고 거룩한) 사람이 되는 방법은,

즉 깨끗한 사람이라고 하느님의 인정을 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방법은

‘사랑 실천’이라는 가르침이기도 하고,

‘탐욕과 사악으로’ 가득 찬 생활을 했던 사람들이 회개하고 보속하려면,

‘사랑 실천’부터 해야 한다는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모든 것이 깨끗해진다는 말과 거룩하고 의로운 사람이 된다는 말과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받는다는 말은 모두 뜻으로는 같은 말입니다.)

 

여기서 ‘속에 담긴 것’이라는 말은, ‘가지고 있는 재산’이라는 뜻인데,

만일에 그 재산이 탐욕과 사악으로 얻은 재산이라면,

즉 남에게서 빼앗은 것이라면 당연히 원래의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합니다.

(자선을 베푸는 일도 주인에게 돌려주는 일에 속합니다.)

회개한다면서 그 재산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거짓 회개입니다.

 

정당하게 얻은 재산이라고 해도 재산에 대한 애착심을 버려야 합니다.

어떤 부자가 예수님께 와서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루카 18,22).”

이 이야기에 나오는 부자가 어려서부터 십계명을 다 지켜 왔다고 말했을 때,

예수님께서 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셨기 때문에(마르 10,21)

그가 부정한 방법으로 재산을 모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그래도 어떻든 그 부자는 재산을 많이 가지고 있었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재산에 대한 애착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고,

그 애착심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 데에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 부자는 율법에 규정되어 있는 대로 자선을 실천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랑 실천이라고 말하기에는 부족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너에게 아직 모자란 것이 하나 있다(루카 18,22).”

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에게 모자란 것 하나는 바로 ‘사랑’입니다.

(재산에 대한 애착심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곧 사랑이 부족한 것입니다.

사랑이란 아까워하지 않고 모두 주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사랑에 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고, 모든 신비와 모든 지식을 깨닫고,

산을 옮길 수 있는 큰 믿음이 있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1코린 13,2).”

(여기서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라는 말에는,

“나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사랑 없이는 구원도 영원한 생명도 얻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을 예수님의 말씀에 연결해서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깨끗하게 보여도, 사랑이 없으면 그것은 깨끗한 것이 아니다.

아무리 거룩하게 보여도, 사랑이 없으면 그것은 거룩한 것이 아니다.”

‘사랑’은 신앙생활의 출발점이고, 신앙생활을 하는 기본 방식이고,

신앙생활을 완성시키는 최종 목표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전주교구신풍성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