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 (루카 12,1-7)
<두려워하지 말고 복음을 선포하여라.>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루카 12,2).”
1) 이 말씀을, “복음을 숨기지 말고 드러내라.
복음을 감추지 말고 널리 알려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니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 주어야 합니다.
만일에 복음을 전해 받은 사람이 혼자서만 그것을 간직하고서
다른 사람에게 다시 전해 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등불을 켜서 숨겨 두거나 함지 속에 놓아두는(루카 11,33) 것과 같습니다.
제 구실을 못하는 등불은 ‘쓸모가 없으니’ 밖에 버려질 것입니다(마태 5,13).
2) 이 말씀을, “지금은 복음이 감추어져 있는 것처럼 보여도
언젠가는 온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될 것이다.”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해석한다면 이 말씀은,
복음 선포 사업은 반드시 완수될 것이라는 예언이고,
또 이 사업에 참여하는 이들에게 믿음과 용기를 주시는 말씀입니다.
동시에 우리에게는 숙제가 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언젠가는 예수님의 구원 사업이 완수되고, 하느님 나라가 완성될 텐데,
복음 선포 사업에 참여한 사람은 그 나라에서 한 몫을 차지하겠지만,
참여하지 않고 구경만 한 사람은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어두운 데에서 한 말을 사람들이 모두 밝은 데에서 들을 것이다.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속삭인 말은 지붕 위에서 선포될 것이다(루카 12,3).”
이 말씀은, 적극적으로 또 공개적으로 복음을 선포하라는 지시로 해석됩니다.
마태오복음을 보면, 이 말씀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에서 말하는 것을 너희는 밝은 데에서 말하여라.
너희가 귓속말로 들은 것을 지붕 위에서 선포하여라(마태 10,27).”
여기서 ‘어두운 데에서’ 라는 말과 ‘골방에서’ 라는 말은,
‘이스라엘에서’로 해석할 수 있고,
‘밝은 데에서’ 라는 말과 ‘지붕 위에서’ 라는 말은,
‘온 세상 모든 사람’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교는 처음에는 예루살렘에만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랬는데 스테파노 순교 후에 박해를 받으면서 온 세상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그날부터 예루살렘 교회는 큰 박해를 받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사도들 말고는 모두 유다와 사마리아 지방으로 흩어졌다(사도 8,1).”
“한편 흩어진 사람들은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말씀을 전하였다(사도 8,4).”
또 사도들은 처음에는 이방인을 대상으로 한 선교활동을 별로 하지 않았는데,
베드로 사도에게 계시가 내리면서 이방인 선교에 나서게 됩니다.
“(베드로는) 하늘이 열리고 큰 아마포 같은 그릇이 내려와
네 모퉁이로 땅 위에 내려앉는 것을 보았다.
그 안에는 네발 달린 짐승들과 땅의 길짐승들과 하늘의 새들이 모두 들어 있었다.
그때에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어라.’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베드로는 ‘주님, 절대 안 됩니다. 저는 무엇이든 속된 것이나 더러운 것은
한 번도 먹지 않았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베드로에게 다시 두 번째로 소리가 들려왔다.
‘하느님께서 깨끗하게 만드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마라.’
이러한 일이 세 번 거듭되고 나서
그 그릇은 갑자기 하늘로 들려 올라갔다(사도 10,11-16).”
이 환시는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을 선포할 것을 촉구하는 계시로 해석됩니다.
(여기서 온갖 짐승은 온 세상의 모든 사람을 상징하는 것으로,
‘속된 것이나 더러운 것’은 한 번도 먹지 않았다는 베드로 사도의 말은,
이방인 선교를 망설이던 당시의 사도들의 태도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나의 벗인 너희에게 말한다.
육신은 죽여도 그 이상 아무것도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누구를 두려워해야 할지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육신을 죽인 다음 지옥에 던지는 권한을 가지신 분을 두려워하여라.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바로 그분을 두려워하여라(루카 12,4-5).”
이 말씀에서 ‘벗’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신앙인들)을 뜻합니다.
“나의 벗인 너희에게 말한다.” 라는 말씀에는,
“너희는 지금부터 하는 나의 말을 벗으로서(신앙인으로서) 잘 새겨듣고,
그대로 실천하여라.” 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두려워하다.’ 라는 말을 ‘섬기다.’로 바꿔서 생각하면,
말씀의 뜻이 더욱 분명해집니다.
“육신은 죽여도 그 이상 아무것도 못하는 자들”은
신앙인들을 박해하는 세속의 권력자들입니다.
우리는 박해받는 것이 무서워서 세속의 권력자들을 섬기면 안 됩니다.
“육신을 죽인 다음 지옥에 던지는 권한을 가지신 분”은
인간의 생명에 대해 ‘생살여탈권’을 가지고 계신 하느님입니다.
우리는 하느님만 섬겨야 합니다.
하느님은 박해자들의 생명에 대해서도 권한을 가지고 계신 분입니다.
박해자들은 자기 마음대로 신앙인들을 죽이거나 살리면서
자기가 생살여탈권을 가지고 있는 줄 알지만, 그것은 착각일 뿐입니다.
“참새 다섯 마리가 두 닢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도 하느님께서 잊지 않으신다.
더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루카 12,6-7).”
이 말씀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세심하게 보살피시고 보호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참새들의 목숨도 하느님의 섭리 안에 있습니다.
신앙인들의 순교를 세속의 눈으로만 보면,
마치 참새들의 죽음처럼 하찮은 죽음으로 보이지만,
또 박해자들의 횡포를 하느님께서 무기력하게 방관하시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느님께서 힘이 없으셔서 박해자들을 내버려 두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은 하느님의 계획과 섭리를 잘 모르지만,
언젠가는 온전히 알게 될 때가 올 것입니다(1코린 13,12).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말씀을 선포하십시오.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꾸준히 계속하십시오(2티모 4,2).”
우리가 하느님만 섬기면서 ‘삶으로’ 복음을 증언하고,
세상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고,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 위대한 일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전주교구신풍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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