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대가 대부분 제대 가까이에 자리 잡고 있는 반면 나중에 도입된 강론대는 성전의 회중석 가까이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강론대는 오직 강론을 위해서만 사용되었습니다.
강론대는 제대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성찬식 거행 때 하는 그날 독서 내용과 관련있는 강론은 종종 설교로서의 성격을 상실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공허한 열변이 그 자리를 차지하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강론대에서 하는 강론의 전통은 훌륭한 것이었습니다.
대성당, 탁발 수도회의 성당, 바로크 양식의 순례지 성당의 강론대는 위대한 강론가들의 강론을 떠오르게 합니다.
여기에서는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 사보나 올라, 산타 클라라의 아브람을 포함하여 20세기에 이르기까지 많은 분들을 연상케 합니다.
고딕과 르네상스 시대, 특히 바로크 시기에 제작되어 설치된 많은 강론대들이 가톨릭교회의 성당들 안에 보존되어 오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강론대는 조각상, 부조, 그림으로 장식되었습니다.
그것들은 하느님 말씀 선포에 관한 성경 구절들을 참조하고 있습니다.
특히 장식에 자주 등장하는 것은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형상화한 것입니다.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갑니다.
이 모습을 보는 사람은 자신의 마음 안에 하느님 말씀을 위한 기름진 땅을 준비하고 있는지, 없는지 물어보도록 합니다.
강론대가 지니고 있는 이러한 영적이고 예술적인 유산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가장 최근에 개최된 공의회 이후 많은 강론대가 일종의 '성상 파괴 운동'에 희생물이 되었습니다.
강론대늘 독서대로 변형한 결과는 오래된 강론대의 일부를 부수거나 제거하는 원인으로 작용하였습니다.
현재 남아 있는 강론대를 미사 거행 때, 무엇보다도 강론을 곁들이는 묵상 전례 때, 다시 사용할 수 있도록 소중하게 다루어야 할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말씀의 식탁이 다시 풍요롭게 차려져야 한다는 공의회의 요구를 단순히 전례에서 말을 많이 해야 한다는 요청으로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많은 곳에서 이미 이른바 '전례적 수다'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는 거룩한 말씀과 거룩함의 차원을 모두 왜곡시켜서 말씀을 해설하고 밝혀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독서대와 오래된 강론대는 언제나 부드러운 지혜와 예언자적 분노와 조화를 이루며 말씀을 잘 선포하여 듣는 사람들의 귀와 마음을 울리고 열어 놓도록 해주는 강론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안영욱 역/에콘 카펠라리 저 '전례와 일상의 거룩한 표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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