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7년 11월 17일 가해 연중 제32주간 금요일(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 수도자 기념일)

dariaofs 2017. 11. 17. 07:05

 

 

헝가리의 프레스부르크(Pressburg)에서 국왕 앤드레 2세(Endre II)와 왕비 제르트루다(Gertruda)의 딸로 태어난 성녀 엘리사벳(Elisabeth)은 14세 되던 해에 튀링겐(Thuringen) 영주 헤르만 1세(Hermann I)의 둘째 아들인 루트비히 4세와 결혼하였다.

 

비록 이 결혼이 정치적 이유로 이루어졌지만 화목하고 평화스러웠다고 하며 6년 동안을 서로 만족스럽게 살았다. 그들의 집은 아이제나흐(Eisenach) 근교의 바르트부르크(Wartburg) 성에 있었고 자녀는 세 명을 두었다.

그러나 1227년에 루트비히 4세가 풀리아(Puglia)로 출정하는 십자군에 가담하였다가 9월 11일 이탈리아 남동부 오트란토(Otranto)에서 전염병으로 사망하고 말았다.

 

그 후 그녀는 온갖 슬픔을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하여 몸부림치다가 자선활동에 전념하기 위하여 집안의 많은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었다고 한다.

 

이런 저런 이유 때문에 그녀는 자녀들을 위하여 대비책을 마련한 뒤에 작은 형제회 3회원이 되어 세속을 떠났다. 이때부터 그녀는 헤센(Hessen)의 마르부르크(Marburg) 성에 살면서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돌보는데 헌신하였다.

성녀 엘리사벳은 마르부르크의 콘라트(Conrad)로부터 영적 지도를 받았는데, 그녀의 영적 생활은 날이 갈수록 풍요롭게 변화되었다. 누구나 놀랄 정도로 가난하고 겸손한 삶을 살았으며 깊은 사랑으로 모든 이들을 감쌌던 것이다.

 

그녀는 운명하기 4년 전에 자신을 쫓아냈던 시동생으로부터 마르부르크 성으로 돌아올 허가를 받았고 또 그녀의 아들에게 백작을 승계시킬 수 있었다.

여왕이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위하여 직접 음식을 날라주고 옷을 지어 준 것은 전대미문의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그녀는 독일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성녀가 되었다.

 

그녀는 불과 24년밖에 살지 못하고 마르부르크에서 운명하였지만 오늘날에는 작은 형제회 재속 3회의 수호성인으로 높은 공경과 사랑을 받고 있다.

그녀는 1235년 5월 28일 성령 강림 대축일에 이탈리아 페루자(Perugia)에서 교황 그레고리우스 9세(Gregorius IX)에 의하여 시성되었다.

 

14세기 이후 엘리사벳의 성화는 망토에 장미꽃을 담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졌는데, 이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려고 몰래 빵을 감추고 나가다가 남편에게 들키자 그 빵이 장미꽃으로 변했다는 전설에 따른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빵 제조업자와 빵 집의 수호성인이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불을 좋아했고, 그래서 불 때는 것도 좋아했습니다.

좋아한 이유는 아침 일찍 일어나는 제가 가족들이 일어나기 전에

방을 덥히고 식구들이 일어나 따듯한 물로 씻게 했기 때문이지만

그런 선행의 이유 말고도 불 때는 것 자체가 좋았기 때문입니다.

 
불을 때고 있으면 아무 생각이 없고 불에 빠져듭니다.

그러니까 새벽의 고요함 속에 불 속으로 제가 들어가

무념무상의 경지에서 불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불을 보고 있으면 불이 모든 것을 불살라 버리듯

마음속의 온갖 고뇌와 상념을 태워버리고 그래서

마음은 비어 공空이 되고 불이 안으로 들어와 불과 하나가 되는 겁니다.

불이란 것이 이런 것이니 제가 어찌 불에 빠져들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런 경험 때문에 1980년대에 본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라는

영화에서 동자승이 불을 때며 불에 빠져드는 장면이나

다비식과 같은 장면을 통한 불의 상징을 저는 금세 이해할 수 있었고,

불을 숭배한다는 배화교拜火敎의 교리를 잘 알지 못하지만

불을 왜 숭배하는지를 느낌으로 이해할 수 있었지요.

 
불 얘기를 왜 이렇게 길게 얘기했냐 하면

“그들은 하느님을 찾기를 바랐지만 그러는 가운데 빗나갔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것들이 하도 아름다워 그 겉모양에 정신을 빼앗기고

마는 것이다.”는 오늘 지혜서 말씀에 대한 저의 공감을 얘기키 위함입니다.

 
아름다운 것이 있으면 그것을 보는 순간 “아! 하느님” 한다든지

프란치스코처럼 “당신은 아름다움이시나이다.”고 하면 좋으련만

“아! 아름답다.”하며 그 아름다움에 풍덩 빠져버리고는 맙니다.

 
이것이 신앙인과 신앙이 아닌 사람의 차이입니다.

이것이 프란치스칸과 프란치스칸이 아닌 사람의 차이입니다.

 
그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는 포항의 지진과 같은 자연의 엄청난 위력 앞에서 공포에 질립니다.

우리 인간은 아름다움에도 빠지지만 공포에도 빠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연의 힘에 대한 두려움을 느낄 때 두려움에 빠지는 대신

그리 만드신 하느님의 능력에 대한 경외심을 가질 수 있다면 좋으련만

우리는 자연의 두려움 그 자체에 빠져버리고 맙니다.

 
우리는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관상하고 싶어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모든 것 안에서

그 원인이신 하느님도 볼 수 있어야 하고,

그 자체이신 하느님도 볼 수 있어야 하며

존재자이신 하느님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프란치스칸이라면 프란치스코는 어찌 했는지 봐야겠습니다.

전기 작가인 첼라노는 프란치스코에 대해서 이렇게 묘사하지요.

 
“그는 창작가이신 그분을 찬미하였다.

그는 아름다운 사물들 안에서 아름다움 자체를 보았다.

모든 사물이 그에게는 선이었고, 그분의 발자국이 서려 있는

사물들을 통하여 그는 어디서나 사랑이신 그분을 따라갔다.

그는 모든 사물로 사다리를 만들어 그 사다리를 밟고 옥좌로 올라갔다.”

 
오늘은 지혜서와 함께 이것을 묵상하는 하루가 되도록 합시다.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