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 그리고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고 물으십니다. 아이들 말로 내가 누구게? 하신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야 그렇다 치고 당신과 늘 붙어 다니다시피 한 제자들에게 당신이 누구냐고 물으신 것은 왜 일까요? 어쩌면 제자들 입장에서는 참으로 생뚱맞은 질문이었을 것입니다.
주님의 입장에서는 제자들이 당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가 중요한 관심사였을 것입니다. 제자들이 당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하는 것이 바로 제자들의 영적 수준을 대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드로 사도가 나서서 당신은 하느님의 아들이십니다 라는 고백을 합니다. 그만큼 베드로사도의 영적수준이 높은 경지에 있었음을 알려주는 표시이기도 합니다.
주님께서는 베드로사도를 보고 너는 반석이라 하시면서 그의 믿음 위에 당신의 교회를 세울 것이라고 하십니다.
우리를 일컬어서 사람들은 혹은 천주교신자나 예수쟁이 혹은 크리스천이라고 부릅니다. 다양한 명칭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공통점은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이란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님을 받아들이는 양태는 정말 천양지차입니다. 건성으로 믿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분들은 진정으로 하느님을 자신의 인생길을 이끌어주시는 분으로 받아들이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정말 나의 주님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신학을 공부해야 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그 보다는 자기탐색을 해야 합니다. 즉 자기마음 안을 들여다보고 이해하고, 그 안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찾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왜 자기 안으로 들어가는 자기탐색을 하려고 하지 않는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자기내면세계에서 주님의 현존을 찾는 작업은, 굴곡이 심하고 표지판도 없고 잘 보이지도 않는 험한 길을 가는 것과 유사합니다. 순탄한 길을 가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험한 길을 가다가 헤매고 넘어지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길을 찾아 나섰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서 포기하고 마는 것입니다.
또한 자기탐구는 마음에 불안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되면, 마음에 불안이 일어날 수 밖에 없지요.
주님께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하신 것, 부자 청년에게 가혹한 주문을 하신것,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라야 한다고 하신 것 등은 바로 이 자기 내면탐구의 길이 얼마나 험난한 것인가를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탐색은 이루어져야 합니다. 철학자 키르케고르(Kierkegaard)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탐구는 불안을 낳지만 탐구하다는 것이 자아상실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장 높은 의미에서 탐구는 자아를 더 깊이 의식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기 자신을 깊이 알아갈수록 주님께 더욱 더 가까이 가게 되고, 성서 말씀의 진의를 더 깊이 깨닫게 되고, 마음의 불안함이 덜어져간다는 말씀입니다.
홍성남 마태오 신부(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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