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합은 아람족과의 전투에서 화살에 맞아 전사한다(1열왕 22,35). 어이없는 죽음이었다. 이제벨의 반응은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 맏아들 아하즈야가 8번째 임금이 되었다.
하지만 2년 만에 옥상에서 떨어져 후유증으로 죽는다. 동생 요람이 왕위를 이었다. 이제벨은 임금의 어머니로 모든 상황에 관여했다. 그러면서 더욱 막강해진 힘으로 이스라엘을 20년 가까이 휘저었다.
남쪽 왕국에는 자신의 딸과 혼인한 여호람이 왕으로 있었다. 그가 죽고 외손자 아하즈야가 임금이 되는 것도 보았다.
하지만 예후의 반란으로 1년 만에 죽는 것도 보게 된다. 이제벨 역시 쿠데타 세력에 살해된다.
아합은 아람족과 세 번째 전투에서 죽었다. 아람은 지금의 시리아다. 다마스쿠스 인근에 살던 민족으로 당시 왕은 벤 하닷Ben-Hadad 2세였다. 첫 전투에서 아합은 승리한다. 두 번째 전투에서는 벤 하닷을 사로잡지만 살려준다(1열왕 20,34).
동쪽에서 세력이 커지고 있던 아시리아 견제를 위해서는 아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방패 역할로 판단한 것이다. 이후 이스라엘과 아람은 3년간 전쟁이 없었다(1열왕 22,1).
아합이 전사한 세 번째 전투에는 남쪽 임금 여호사팟도 동참했다. 둘 사이는 좋았다. 아합의 딸 아탈야와 여호사팟 아들 여호람은 부부였다. 두 임금은 사돈 간이었던 것이다. 화합 무드는 아합의 죽음으로 시들해진다.
주변국과 힘의 균형도 서서히 바뀐다. 북쪽 지배를 받던 모압은 독립을 시도했다. 남북 연합군이 응징했지만 제압에는 실패한다(2열왕 3,27). 남쪽에 조공을 바치던 에돔 역시 반기를 들었다(2열왕 8,20).
아시리아를 견제하던 동맹체제는 무너진 것이다. 아합은 지극히 현실적인 왕이었다. 바알 숭배 역시 현실주의 결과였을 뿐이다. 하지만 신정국가에서는 용납될 수 없었다. 예언자들의 비난을 사고 사악한 왕으로 기록된 이유다.
마침내 엘리사는 예후 장군을 사주해 반란을 일으키게 한다. 예언자 그룹과 군부가 합세한 쿠데타였다.
북쪽 임금 요람과 남쪽 임금 아하지야는 살해된다.
요람은 아합의 아들이었고 아하지야는 외손자였다. 남쪽으로 시집 간 아합의 딸 아탈야의 아들이 아하지야였던 것이다.
예후의 칼날은 이제벨을 향한다.
악의 축이었던 여인이다. 죽음에 직면한 그녀의 모습을 열왕기는 이렇게 전한다. 눈 화장을 하고 머리를 꾸민 다음
창문으로 예후가 오는 걸 보고 있었다(2열왕 9,30). 당당하게 마지막을 맞겠다는 모습이었다.
신은근 바오로 신부(마산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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