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드키야Zedekiah는 유다 마지막 왕이다. 이집트 속국이었던 유다를 바빌론 속국으로 바꾸면서 네부카드네자르가 임명했다.
요시야 셋째 아들로 원래 이름은 마탄야Mattaniah였는데 바빌론 측에서 바꾸게 했다(2열왕 24,17). 친 바빌로니아 세력으로 살라는 암시였다. 당시 21살 청년이었다. 네부카드네자르는 임금으로 앉히면서 엄청난 조공과 세금을 부과했다.
경제적 부담을 안긴 것이다. 당연히 제관들과 유지들은 곱게 넘어가지 않았다. 서서히 젊은 치드키야를 압박하며 항전 쪽으로 이끌었다. 이집트 및 인근 국가들과 정보를 교환하며 바빌론에 대한 반란을 현실화시켜 나갔다.
예언자 예레미야는 줄기차게 반대했다. 바빌론 항전은 멸망을 자초하는 일이라며 말렸다. 예루살렘을 위해선 조공을 바치며 기다려야 한다고 외쳤다. 예언자는 옥에 갇힌다.
마침내 치드키야 통치 9년(BC 589년 겨울) 바빌로니아와 전쟁을 시작했다. 이집트와 주변국은 지원을 약속했다. 하지만 예루살렘이 포위되자 지원은 차단되었다. 바빌론 군대는 토성을 쌓으며 쉬엄쉬엄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2년 반이 지났다. 성안엔 기근이 들고 양식은 바닥났다(2열왕 25,3). 기원전 586년 여름, 마침내 성의 한쪽 벽이 뚫리자 바빌론 군대의 보복이 시작되었다. 치드키야와 측근들은 밤을 틈타 요르단 강변 아라바 쪽으로 피신했다.
하지만 예리코 벌판에서 잡힌다(예레 39,5). 네부카드네자르 왕은 치드키야가 보는 앞에서 그의 두 아들을 죽였다.
왕손王孫을 끊은 것이다. 치드키야는 외쳤다. 차라리 내 눈을 뽑아다오. 그러자 그의 두 눈을 뽑고 사슬에 묶으라는 명령이 떨어졌다(2열왕 25,7). 이렇게 해서 유다 왕조는 끝났고 바빌론 포로 시대가 시작되었다.
백성들은 바빌론으로 끌려갔다. 예루살렘은 철저히 파괴되었고 성전은 불타버렸다. 치드키야는 눈에 붕대를 감고 사슬에 묶인 채 옥에 갇혔다. 33살 한창나이였다. 유다의 젊은이들은 노예로 팔려갔다.
네부카드네자르는 사판의 손자 그달야Gedaliah를 유다 총독으로 임명한다(2열왕 25,22). 사판은 요시야 때 율법학자(서기관)였다(2열왕 22,3). 제관 계급에게 예루살렘 뒷수습을 맡긴 것이다.
그달야는 안정을 위해 애썼지만 저항세력에 암살당한다(예레 41,2). BC 597년 여호야킨이 폐위되면서 1차 바빌론 포로가 생겼다. BC 586년 성전 함락으로 2차 바빌론 포로가 있었다. BC 582년 그달야 총독 암살로 3차 바빌론 포로가 등장한다.
해방은 BC 538년이다. 597년 추방에서 538년까지는 59년이 된다. 학자들은 586년 예루살렘 파괴 이후를 실질적 추방 시기로 보고 있다. 이 주장에 의하면 바빌론 포로 기간은 48년이다.
신은근 바오로 신부(마산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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