므나쎄Manasseh는 유다 14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BC 696~642년. 북이스라엘과 남쪽 유다를 통틀어 가장 오랫동안 임금으로 있었다(55년). 열왕기와 역대기는 악한 왕으로 평가한다.
그의 범죄로 유다와 예루살렘이 망하게 되었다고 했을 정도다(2열왕 21,11). 하지만 역사적 평가는 다르다. 현실의 흐름에 냉철하게 적응했던 왕으로 판단한다. 그의 치세 동안 아시리아의 침략은 없었다. 철저히 순응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피폐했던 유다는 일어설 수 있었다. 구약성경 편집은 바빌론 유배 때 시작된다. 민족의 정체성을 다시 찾자는 작업이었다. 주축은 제관 계급으로 전승 사료史料와 구전口傳이 자료다. 그들의 역사관은 왕의 평가에서 드러난다.
치적으로 평가하지 않았다. 전통신앙 옹호로 판단했다. 업적이 뛰어나도 우상숭배를 허락했다면 악한 왕이었다.
공적이 약해도 주님께 충실했다면 선한 왕이었다.
북이스라엘 최전성기를 구현했던 아합은 그런 이유로 사악한 왕으로 기록되었다.
므나쎄의 할아버지는 아하즈다. 당시 아시리아는 가나안 땅을 무력으로 눌렀다. 아하즈는 왕궁의 보물을 바치며 속국을 자청한다(2열왕 16,7). 안정을 위해서였다. 군사력으론 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덕분에 나라는 평온했다. 매년 조공을 바쳐도 아시리아 그늘에서 국력을 키울 수 있었다. 아하즈 아들 히즈키야 때 북쪽은 멸망한다. 수도 사마리아엔 이방인이 들어왔다. 그들과 어울리길 거부했던 주민들은 남쪽으로 이주했다.
숫자가 만만치 않았다. 유다는 서서히 강해졌다. 북쪽 땅을 회복해 예전 영화를 찾자는 민족주의가 득세했다. 히즈키야는 편승한다. 산당 제사를 금지시키고 예루살렘에서만 제사 지내게 했다. 제관 계급은 힘을 실어줬다.
히즈키야는 서서히 아시리아에 반발한다(2열왕 18,7). 이집트와 손잡고 속국에서 벗어나려 했다. 아시리아는 보복에 나선다. 유다 땅을 초토화하며 예루살렘을 포위한 것이다. 히즈키야가 엄청난 배상금을 바치자 겨우 풀어줬다(2열왕 18,14).
이후 왕의 권위는 추락했고 병으로 죽었다. 후임자가 므나쎄다. 그는 즉시 속국을 인정하며 철저한 순종을 약속했다. 출토된 아시리아 기록엔 공물을 바친 군주로 이름이 올라있다. 이집트 정벌에 종군했다는 기록도 있다.
확실하게 아시리아 정책을 수행한 것이다. 그 보답으로 조공은 줄었고 안전은 보장되었다. 이렇게 해서 므나쎄는 55년이란 긴 세월 동안 전쟁 없이 통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왕국 재건과 평화라는 두 토끼를 잡은 셈이다. 하지만 역대기는 악한 왕으로 평가했다.
신은근 바오로 신부(마산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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