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6일
어제부터 필리피서를 읽고 있습니다.
이번주 토요일까지 필리피서를 읽을 것인데
필리피는 지금의 그리스 북부지역에 위치해 있습니다.
바오로가 선교여행에서 복음을 전했고
이곳이 바로 유럽으로 복음이 처음 전파된 곳이기도 합니다.
필리피서는 특히 바오로사도가 이 서간 안에서 기쁨이라는 단어를 많이 써서
‘기쁨의 서간’이라는 별칭으로 불리우기도 합니다.
생애 말엽 로마에 있는 옥에 갇혀 있으면서
바오로 사도는 필리피 신자들이 보여준 호의와 사랑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드린 것에 대한 감사와 기쁨이
드러나는 서간입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박해를 받아 감옥에 갇혀 있다면,
아마도 여러분이 감사해야 할 사람을 한사람 한사람 떠올리며
편지를 쓴다고 생각하시면 바오로 사도의 마음을 잘 느끼시리라 생각됩니다.
이러한 관점을 염두해두면서 오늘 독서를 한번 바라봅시다.
오늘 독서는 일명 ‘그리스도 찬가’라는 명칭으로 알려져 있는 구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드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분께 주셨습니다.”
이 아름다운 구절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정수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모든 권능을 내려놓고 인간이 되신 하느님은
자기 자신을 인간을 위하여, 인간을 사랑하시기에
죽음의 길로 나아가셨고,
그 사랑의 힘으로 부활 한다는 이야기 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힘으로 부활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힘으로 부활하신다는 것은
우리에게 사랑의 힘을 더욱 강렬히 느끼게 합니다.
누군가가 나를 사랑한다고 느낄 때,
누군가가 나를 위해 목숨을 내놓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우리는 형언할 수 없는 위로와 힘을 느끼게 됩니다.
나에게 힘이 되어주는 그것을 우리는 사랑의 힘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 나오는
그리스도 찬가는 바로
하느님의 사랑을 찬미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자신을 비우시고
스스로 종이 되신 겸손과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에 대하여
우리는 어떻게 감사를 드릴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가 오해를 받을때,
시련을 받으며,
따돌림 받을 때,
모든 어려움을 마음에 품고 있어야만
우리는 하느님의 겸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고,
하느님의 겸손을 이해할 때,
비로소 감사를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마치 젊은 아가씨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워봐야
어머니의 마음을 알 수 있듯이
우리도 그리스도께서 가신 길을 한발짝 한발짝 나아갈 때,
예수님의 겸손을 조금씩 조금씩 이해할 수 있을 것이고
십자가 길에 숨어있는 하느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낮추어진 바로 그 무력한 상태에서
오히려 Deus absconditus,
숨어계신 하느님을 만날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아이러니한 신앙을 우리는 신비라고 부릅니다.
바로 이 신비를 알아듣고
어려움을 피하기 보다는
오히려 어려움 안에 머무르려 하는 것이
우리가 하느님께 불러드리는 그리스도 찬가일 것입니다.
박동현 제노 신부(대전교구 목동성당 보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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