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희를 친구라 불렀다."(요한 15,14)
예수님께서 제자들을(우리를) 친구라 부르십니다! 종은 수직적 · 종속적 상하 관계에서 오지만 친구는 수평적이고 대등한 관계입니다. 그러니 한낱 피조물에 불과한 우리가 주님의 친구로 불린다는 건 참으로 황송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모두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요한 15,15)
언젠가 아주 어려운 일을 결정해야 하는 순간을 마주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며칠 전에 다가올 일을 대충 짐작하게 해주는 꿈을 꾼 것이 떠올라 힘들지만 응답을 했었지요. 하느님께서 당신의 계획을 미리 암시해 주신 것 같이 느껴져서 였읍니다.
저 같이 부족한 사람을 자상하고 섬세하게 존중해 주신 것에 대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표현이었지요.
그분은 저만치 윗자리에 올라선 채 눈을 내리깔고 "너 따위는 몰라도 돼!" 하는 권위주의적이고 심술궂은 주인이 아니십니다.
우리가 약한 만큼 더 세심하게 살피시며 눈높이에 맞게 말을 걸어오는 분이시지요. 그분의 이런 자상하고 겸손한 배려와 사랑을 깨닫게 되면, 더 이상 나에 대한 그분의 계획을 굳이 캐묻지 않게 됩니다.
그 "사랑"이 하시는 일이니 어련히 알아서 하실까... 하는 믿음이 있으니까요.
예수님께서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시는 "계명", "열매", "명령"은 모두 "사랑"을 가리킵니다. 당신이 곧 사랑이고, 아버지가 사랑이시니 우리도 당연히 되어야 할 "모습"이지요.
제1독서에서는 안티오키아 공동체에 전달된 예루살렘 공의회의 결과를 보여줍니다. 이 대목에는 "우리"라는 말이 여러 차례 등장합니다.
먼저 예루살렘의 사도들과 원로들은 그리스도인이 된 이방인들에게 옛 유다의 관습을 강요해 혼선을 주었던 이들을 "우리"라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우리 가운데 몇 사람이 ... 여러분에게 가서 놀라게 하고 어지럽게 하였다는 말을 들었습니다."(사도 15,24) 실수를 하긴 했지만 그들도 "우리"의 범주 안에 있다는 걸 부정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그들은 체면을 유지하고 비판을 피하려 무조건 부정하고 보는 비겁함을 선택하지 않고, 다만 그런 의견이 "우리" 전체의 뜻이 아니었음을 밝히는 것으로 정리합니다.
"성령과 우리는 다음의 몇 가지 필수 사항 외에는 여러분에게 짐을 지우지 않기로 결정하였습니다."(사도 15,28)
예수님에게서 "친구"의 지위를 얻은 사도와 원로들은 이 결정이 "성령과 우리"의 뜻임을 밝힙니다.
실제로는 결코 동일선상에 놓일 수 없는 두 존재, 하느님의 영과 피조물인 인간이 함께 결론을 내린 것이지요. 이는 하느님 편의 무한한 겸손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인데, 예수님은 "사랑"으로 이를 가능하게 해주신 것입니다.
이 편지를 받은 안티오키아 공동체는 "편지를 읽고 그 격려 말씀에 기뻐하였다."(사도 15,31)고 합니다. 그들의 기쁨에 함께 머무릅니다.
그들은 몇몇 주장 앞에서 어찌할 바 몰랐던 혼란에 대해 이해받았고, 이제 갓 태어난 신앙의 약함을 존중 받았습니다.
또 자기들 문화와 풍습에 맞추어 신앙을 살아갈 방법을 배려 받았습니다.
그리하여 예루살렘 모교회의 "친구"가 되고 또 "우리"가 되었음을 확인하니 얼마나 기뻣을까요! 하나이신 하느님의 자녀로,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몸으로 인정받은 그 기쁨을 무엇에 비길 수 있겠습니까!
일상을 살면서 눈을 크게 뜨고 마음을 활짝 열어 온 세상에 깃든 하느님의 뜻에 깨어 있다면, 우리는 자분자분 당신의 마음과 뜻을 나눠주시는 주님의 자상한 속삭임을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친구고, 그분과 함께 "우리"니까요. 우리끼리는 '척! 하면 척!' 서로의 마음을 읽어줄 수 있습니다. 이 "우리"에 대한 강한 소속감과 신뢰는 아무리 깊고 어둔밤이 다가와도 신뢰와 인내라는 마음의 등불을 꺼뜨리지 않게 해 줄 겁니다.
그래서 오늘, 벗님과 함께 "우리" 이렇게 고백합시다. 친구 예수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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