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9.09.13. 한가위

dariaofs 2019. 9. 13. 06:04




가족, 친지들이 한데 모여 조상들을 기억하고 지난 한 해 동안 주님께서 맺어 주신 결실을 나누는 한가위 명절입니다.


교회는 오늘, 이미 세상을 떠난 조상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도록 초대하는 동시에 우리 모두 각자의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도록 촉구합니다.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루카 12,15).


육신의 생명은 재산에 따라 한시적으로 연명이 가능하기도 합니다만, 영원한 생명은 다른 문제입니다.


생물학적 동력과 움직임이 사그라지면서 세상 질서를 넘어서는 순간 인간은 새로운 질서로 들어가지요. 그런데 그곳의 질서는 세상에서 누리던 양태와는 사뭇 다른 듯합니다.

"어리석은 자야"(루카 12,20).


예수님께서 많은 소출을 거둔 한 부유한 사람의 비유에서 그를 이렇게 부르십니다. 큰 수확량에 신이 나서 창고를 늘려 지을 생각, 앞으로 즐기며 살 생각에 들뜬 그는 안타깝게도 오늘 밤 목숨을 되찾아 가실 주님께 모든 걸 다 넘겨야 합니다.

"하느님 앞에서의 부유함"(루카 12,21).


예수님은 허무히 죽음을 맞이할 그 부자를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라 부르십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하느님 앞에서 부유하다는 말씀은 무슨 의미일까요?

모든 것의 주인이신 하느님 앞에서 감히 인간이 부유할 수 있으려면, 움켜쥔 재물과 힘 가지고는 어림도 없을 겁니다.


사실 목숨을 비롯해 재물과 명예와 직분 등 모든 것은 주님 것이니까요. 아무리 버둥대도 세상 일이 내 힘만으로는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우리는 이미 체험으로 어느 정도 압니다.


우리는 그분께서 주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소유할 수 없고, 무엇 하나 더 달라고 요구할 권리조차 더더욱 없는 가련한 존재들입니다.

"하느님 앞에서의 부유함"


전부이시고 모든 것을 소유하신 하느님 앞에서 인간은 참 작고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존재지요. 아무리 돈과 물질을 많이 소유했단들 영혼을 빼고 나면 이 세상에서나 효력이 발생할 숫자에 불과할 뿐입니다.


오히려 하느님 앞에서는 자기를 비운 영혼을 부유하다고 보는 것이 예수님 가르침의 역설입니다.


세상 것을 탐하거나 움켜쥐지 않은 만큼 세상에서는 빈한하고 초라한 삶을 살지 모르지만, 그의 영혼은 전부이신 하느님을 담을 수 있을 만큼 맑고 투명하게 깨끗이 비워졌기 때문입니다.

대 데레사 성녀의 기도처럼, 하느님을 소유한 이는 모든 것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어설프게 소유한 세상 물질의 수량을 전부이신 하느님과 비길 수 없지요. 자신을 비운 이는 많건 적건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재물이 자기 것이 아니라는 걸 아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항상 주변을 둘러보며 나눌 기회를 찾지요. 그에게 나눔은 선택이 아니라 사용 권리를 부여받은 재물에 딸려오는 의무와도 같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요엘 2,22).


하느님의 은혜로 풍요와 기쁨이 충만해질 이스라엘을 예언하는 제1독서에서는 이를 전하는 예언자의 목소리도 한껏 고조되어 있습니다.


푸르름, 열매, 결실, 가을비, 봄비, 곡식, 가득, 햇포도주, 햇기름, 넘쳐흐름, 한껏 배불리... 얼마나 풍요롭고 기름진 표현들로 넘쳐나는지 독서 말씀에 머무르는 마음도 흐뭇해질 지경입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설령 세상의 삶이 당장은 상실과 굶주림으로 짓눌려 있을 지라도 하느님께서 주실 축복은 그 눈물을 환희로 바꾸어 주실 것입니다.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나누며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는 것만이 우리의 일입니다.

"이제부터 주님 안에서 죽는 이들은 행복하다. ... 그들이 한 일이 그들을 따라가기 때문이다"(묵시 14,13).


각자의 현실에 따라 위로가 되기도 하고 등골이 서늘해지기도 할 말씀 같습니다. 하느님 앞에 갈 때 "한 일"이 따라온다는 것이 그닥 새삼스런 가르침은 아니지만, 다시 한 번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일침이 되기 때문입니다.

주님 수확의 날, "행복하다"는 덕담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지요. 평생 그리워하던 주님과 영원히 얼굴을 마주하는 복된 일치의 삶으로 들어가는 것은 우리 모두의 소망이니까요.


그런데 놀랍게도 내가 세상에서 이웃과 나누느라 포기한 것들이 오히려 나를 따라와 나를 보증해 준다고 합니다. 버리고 내놓은 만큼 잃은 것이 아니라 나도 모르게 하느님 앞에서 부를 쌓고 있던 것이네요.

세상 모든 것은 하느님 것이기에 "좋은 것"입니다.


많건 적건 그분에게서 잠시 사용을 허락받은 우리가 얼마나 주인의 뜻에 맞게 선용하느냐에 따라 그 좋은 것은 더 좋은 것, 더더더 좋은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자신과 가족을 위해서만 재화를 모으고 쌓고 쓴다면 "좋은 것"의 흐름을 끊고 움켜쥐느라 그 좋은 빛을 가두고 질식시킬 뿐입니다.

모두들 잘 하고 계시겠지만, 주님께서 주신 목숨을 되찾아 가실, 언제일지 모를 그 날이 오기 전, 아니 그 날을 기다리며, 모든 주권을 주님께 내어드리는 이양 작업부터 시작하면 좋겠지요.

"주님, 제가 가진 것은 모두 당신 것이고 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니 이웃을 통해 당신께 되돌려 드립니다. 모든 것을 당신 뜻대로 하십시오." 아멘.

계절이 아낌없이 자신을 나누기에 우리가 풍요로운 한가위 축제를 지내듯이, 우리의 작은 나눔들이 송이송이 결실을 맺어 풍성한 하늘나라 잔칫상을 마련하는 그 복된 날을 그려보는 오늘 되시길 축원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