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과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한 인간, 머튼
▲ 그림=하삼두 스테파노 |
“오늘 「고독 속의 명상(Thoughts in Solitude)」 일본어판 머리글로 쓴 고독에 대한 단상을 다시 고쳐 썼다. 글의 내용이 조금 깊이 있어 보인다. 한가지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사랑이 없다면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사랑과 자유로 열리지 않은 고독은 아무것도 아니다. 사랑과 고독은 진실로 성숙과 자유로 나아가는 바탕이다. 고독을 위한 고독 고독 이외의 것은 모두 배제한 고독은 아무 의미가 없다.”
토마스 머튼이 1966년 4월 14일 쓴 일기의 일부분이다. 머튼은 진정한 고독은 그저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무것도 거부하지 않는 사랑의 충만함”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떻게 그는 고독을 통해 모든 것을 끌어안는 사랑과의 관계를 깨닫게 된 것일까? 그가 이 일기를 쓰기 3주 전 만났던 간호사 학생과의 만남이 이 깨달음에 영향을 미친 것일까?
학생 간호사 M과의 사랑과 이별
1966년 초 머튼은 허리 통증에 시달렸다. 결국, 그는 3월 23일 루이빌에 있는 성 요셉 병원에 입원했고, 일주일 후 허리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회복기를 갖는 동안 그는 회색 눈에 긴 검은 머리의 25세 학생 간호사 M(머튼은 이 간호사의 신변 보호를 위해 이름을 밝히지 않고 ‘M’이라고 자신의 글에 기록했다)을 만났다.
그녀는 머튼을 사랑하게 되었고, 머튼 역시 혼란스러움과 함께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서신 왕래와 만남을 통해 서로를 향한 사랑을 더 깊이 느끼게 되었다.
머튼이 쓴 일기에 그녀를 향한 사랑과 갈등이 애틋하게 기록되어 있어 몇 가지를 함께 읽어 보자.
“M한테서 편지가 왔다. 그녀의 소식을 받는 일이 기뻤다. 나는 이 부드러운 감정 문제를 둘러싼 나의 길에 대해 깊이 성찰해야 한다.… 분명히 그럴 필요가 있다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사랑하는 일을 감수하려 한다. 두려움 없이!”(1966년 4월 19일 일기)
“M이 나를 만나고 싶어 하고 나도 M을 만나고 싶다. … 편지를 주고받는 것을 멈추어야 할 것인가? 나는 더 자유롭고 진실로 뜻한 바대로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이 되어야 한다. 나 자신을 속여서는 안 된다.”(1966년 4월 21일)
“어제 온종일 M과 장거리 규칙에 어긋난다 전화로 통화할지 말지 고민했다. 모두 저녁 식사를 하러 간 사이에 당가 수사님의 사무실에 들어갔다. (그분의 허락을 얻었다.
그분은 나가면서 문을 잠가 주었다.) 전화를 걸었고 병원 식당에 있던 M과 통화를 했다. (그녀는 전화를 받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한참 이야기했다. 여러 이유로 통화가 꼭 필요했고 혼란을 말끔히 씻었다. (1966년 4월 24일)
“나는 두려우면서도 경이롭다. 성적 매력과는 다르다. 물론 내 신분에 대한 갈등은 없다. 나는 서원을 했고 서원 생활에 충실해야 한다.… 영적 사랑이 가능할 뿐 아니라 깊고 강하고 순수하게 우리 사이에 존재한다는 것을 믿는다.”(1966년 4월 27일)
“M과 조금 걸었다. 서로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무아경에 빠지는 것 같았고, 우리는 눈빛으로 사랑을 나누었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은 경이롭고 아름답다. 아무 두려움 없이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온전히 사랑을 말할 수 있다.” (1966년 5월 7일)
위의 일기에서 보듯이 머튼 자신도 처음에 이러한 감정에 대해 몹시 혼란스러웠다. 그렇다고 육체적인 관계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흥분을 불러일으키는 본능적인 감정(id)과 죄의식(super-ego) 사이에 사로잡힌 그의 자아(ego)는 갈등을 겪고 있었다.
그는 “저는 감히 사랑하게 되었고, 사랑이 저에게 불러일으킨 자기 성찰의 불안을 동시에 품고 있었습니다”라고 고백했다. 또한 “저는 너무 많이 사랑받고 그리고 사랑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지금 제 삶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모든 표준을 따라서 볼 때, 이 모든 것은 잘못되었고, 부조리하고, 제정신이 아닌 것입니다”라고 표현했다. 또한, 이러한 내적 충돌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다.
“저는 이 부조리한 존재를 이끌고 살아가야 합니다. 저는 이것에 대해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어떤 경이롭고 신비로운 (사랑) 때문이 아니라 부도덕 때문에 (비난받아야 합니다).”
오직 하느님만을 사랑하겠다고 서약한 수도승으로서, 그는 자신이 여성과 로맨틱한 관계에 연루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과 동시에 이와 모순되게도 행복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한 명의 인간으로서 서로 나누는 사랑이 얼마나 경이롭고 아름다운지를 깨달았다. 그러나 그의 신분과 서원은 그것이 지속되는 것을 외적으로 허락하지 않았다.
머튼은 어떻게 이 모순된 상황을 극복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오늘날 머튼의 이 우정 관계의 로맨스에 대해 어떻게 평가를 하고 있을까? 다음 호에서 살펴보도록 하자.
▲ 박재찬 신부(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부산 분도 명상의 집 책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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