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미사의 말씀에서는 종말의 표징과 구원의 약속이 차례로 제시됩니다.
"저절로 알게 된다"(루카 21,30).
어제까지 종말과 심판의 날에 대한 긴 담화가 이어진 뒤, 예수님께서는 우선 자연의 이치를 비유로 드십니다.
"저절로 알게 된다"(루카 21,30).
어제까지 종말과 심판의 날에 대한 긴 담화가 이어진 뒤, 예수님께서는 우선 자연의 이치를 비유로 드십니다.
학문적으로 많이 배운 사람이 아니어도 본능과 경험을 통해 인식 안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은 지식들이 쌓이게 마련이지요. 가장 흔한 것이 주변 자연 현상을 통한 예측입니다.
"저절로"라는 말씀 안에는 사실 땀흘려 일하시는 성부 하느님의 노고가 숨어 있습니다.
"저절로"라는 말씀 안에는 사실 땀흘려 일하시는 성부 하느님의 노고가 숨어 있습니다.
그것이 어떤 이들에게는 당연한 것이지만, 창조주 하느님을 의식하고 사는 이에게는 매순간의 경이로움이지요. 아무튼 고대의 지혜는 이런 경험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래서 긴 세월을 통해 축적된 경험을 소유한 원로, 노년층이 존경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아라"(루카 21,31).
사람의 아들이 오시기 전에 일어날 표징들은 이미 며칠 전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지요. 하지만 현상을 현상으로, 사건을 사건으로 그냥 지나친다면 축적된 지식도 별 소용이 없을 겁니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아라"(루카 21,31).
사람의 아들이 오시기 전에 일어날 표징들은 이미 며칠 전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지요. 하지만 현상을 현상으로, 사건을 사건으로 그냥 지나친다면 축적된 지식도 별 소용이 없을 겁니다.
어둡고 공포스럽고 잔혹한 재난과, 대혼란이 야기될 재해들 자체에 자지러지고 무너지져 버린다면 자연의 순리와 인과관계에서 얻은 지식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닥쳐올 징벌의 날이 언제가 될지, 견뎌야 할 기간이 얼마나 될지, 누가 살아남을지 아무도 모르지만 단 하나 확실한 사실이 있습니다. 뒤이어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다는 점입니다.
닥쳐올 징벌의 날이 언제가 될지, 견뎌야 할 기간이 얼마나 될지, 누가 살아남을지 아무도 모르지만 단 하나 확실한 사실이 있습니다. 뒤이어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다는 점입니다.
그러니 징벌의 날은 공포와 두려움으로 막을 내리는 "끝"이 아니라 하느님의 나라가 오고 있다는 예고이고 표징이 될 겁니다. 결국 거기에 희망이 있다는 뜻입니다.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루카 21,33).
설령 천지가 뒤흔들리고 뒤집히며 전쟁과 살육이 만연하고 서로가 서로를 적대하고 증오하도록 악이 판을 치는 시기가 오더라도, 그래서 그 때문에 하늘과 땅마저 사라지더라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십니다.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루카 21,33).
설령 천지가 뒤흔들리고 뒤집히며 전쟁과 살육이 만연하고 서로가 서로를 적대하고 증오하도록 악이 판을 치는 시기가 오더라도, 그래서 그 때문에 하늘과 땅마저 사라지더라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십니다.
"말씀"이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은 만물을 창조하시는 하느님의 지혜요 힘입니다. 그러니 잠시의 어둠을 견디면 고대하던 빛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제1독서는 다니엘이 본 무시무시한 환시로 시작됩니다. 등장하는 거대한 짐승 네 마리는 묘사만으로도 끔찍스럽습니다.
제1독서는 다니엘이 본 무시무시한 환시로 시작됩니다. 등장하는 거대한 짐승 네 마리는 묘사만으로도 끔찍스럽습니다.
지난 화요일에 "순금, 은, 쇠, 진흙으로 된 상"이 파괴되는 꿈 해석과 비슷한데, 이 네 짐승들 역시 바빌론, 메디아와 페르시아, 그리스를 상징하지요.
이 왕국을 이어받은 시리아의 셀레우코스 왕국의 열 임금이 "열 개의 뿔"(다니 7,7 참조)로 나타나고, 끝까지 거만하게 떠드는 "열한 번째 뿔"(다니 7,8.11)이 가장 잔인했던 악한 임금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를 가리킵니다.
여기까지는 암흑이고 절망이고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한가운데입니다.
"마침내 옥좌들이 놓이고 연로하신 분께서 자리에 앉으셨다. 그분의 옷은 눈처럼 희고 머리카락은 깨끗한 양털 같았다"(다니 7,9).
분위기는 대반전됩니다. 말씀을 읽는 우리까지도 불쾌하고 혐오스런 공포로 압박하던 표상들 앞에 대법정이 차려지고 만물의 주인께서 "자리"를 잡으십니다.
"마침내 옥좌들이 놓이고 연로하신 분께서 자리에 앉으셨다. 그분의 옷은 눈처럼 희고 머리카락은 깨끗한 양털 같았다"(다니 7,9).
분위기는 대반전됩니다. 말씀을 읽는 우리까지도 불쾌하고 혐오스런 공포로 압박하던 표상들 앞에 대법정이 차려지고 만물의 주인께서 "자리"를 잡으십니다.
이제 사랑으로 창조하셨던 세상 만물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암흑의 세계를 지나 제 자리가 잡힐 것입니다.
"연로하신 분"의 등장과 함께 이어지는 분위기는 밝고 맑고 정결하며 거룩하고 영광스럽습니다. 장엄하고 조화로우며 힘찹니다.
"연로하신 분"의 등장과 함께 이어지는 분위기는 밝고 맑고 정결하며 거룩하고 영광스럽습니다. 장엄하고 조화로우며 힘찹니다.
그 힘으로 인해 "마침내 그 짐승이 살해되고 몸은 부서져 타는 불에 던져졌다"(다니 7,11)고 하지요. 거칠고 험악한 악이 순수하고 거룩한 힘에 파괴되어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에게 주시는 새창조의 은총입니다.
"사람의 아들 같은 이가 하늘의 구름을 타고 나타나 연로하신 분께 가자 그분 앞으로 인도되었다 ... 그의 통치는 영원한 통치로서 사라지지 않고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않는다"(다니 7,12.14).
드디어 희망입니다!
성경과 실제 역사가 말해주고 우리의 경험적 인식이 인정하듯 세상 권세는 한시적이고 불완전합니다.
"사람의 아들 같은 이가 하늘의 구름을 타고 나타나 연로하신 분께 가자 그분 앞으로 인도되었다 ... 그의 통치는 영원한 통치로서 사라지지 않고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않는다"(다니 7,12.14).
드디어 희망입니다!
성경과 실제 역사가 말해주고 우리의 경험적 인식이 인정하듯 세상 권세는 한시적이고 불완전합니다.
악은 온갖 모습으로 얼굴을 바꾸어가며 인류를 현혹시켜 왔지요. 그 사이사이마다 자행된 살인과 박해와 폭력과 파괴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선한 이웃들을 잃어왔는지요.
사실 요즘도 이게 종말인가 할 정도로 온 우주가 몸살을 겪고 있습니다. 기후변화로 인간의 통제 능력을 벗어나는 재해들이 지구촌 곳곳을 유린하고 있지요.
사실 요즘도 이게 종말인가 할 정도로 온 우주가 몸살을 겪고 있습니다. 기후변화로 인간의 통제 능력을 벗어나는 재해들이 지구촌 곳곳을 유린하고 있지요.
함께 잘 살기를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과는 무관하게 인간의 도리와 예의의 기준을 저열하고 천박하게 끌어내리는 무도한 이들이 인권과 평화보다 민족주의, 국가주의, 차별주의를 내세워 분열을 획책하고 저만 잘 살는 세상을 만들려 하지요.
돈과 물질이 사람의 인격과 가치관을 넘어서 보편적 우상의 자리에 당당히 등극한지는 이미 오래지요. 마치 다니엘 예언서 오늘 대목의 전반부가 지금 펼쳐지는 듯합니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아라."
얼마나 큰 위안의 말씀입니까! 어둠이 짙을수록 새벽이 가까웠다고 하지요. 고통이 깊으면 기쁨도 크다고 하지요. 죽음은 부활로 이어지는 통로라고 합니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아라."
얼마나 큰 위안의 말씀입니까! 어둠이 짙을수록 새벽이 가까웠다고 하지요. 고통이 깊으면 기쁨도 크다고 하지요. 죽음은 부활로 이어지는 통로라고 합니다.
이 모든 지혜를 충족시키는 하느님의 새창조, 사람의 아들이 오시는 날을 깨어 기쁘게 기다리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정체성입니다.
그러니 우리 이 어두운 시기에 함께 기도하며 마음을 모읍시다. 나 중심, 내가 속한 단체 중심, 어떤 색깔 중심이 아니라 그리스도 중심으로 마음을 향하고 거기서 새롭게 출발합시다.
그러니 우리 이 어두운 시기에 함께 기도하며 마음을 모읍시다. 나 중심, 내가 속한 단체 중심, 어떤 색깔 중심이 아니라 그리스도 중심으로 마음을 향하고 거기서 새롭게 출발합시다.
먼저 선취한 하느님 나라의 행복으로 세상의 어둠을 이겨내고 빛으로 오실 주님을 맞이하는 작은 빛이 됩시다.
오늘 저희 프란치스칸들은 모든 프란치스칸 성인성녀들을 기립니다. 시대의 작은 빛으로 산 신앙의 영웅들이지요. 우리도 그 대열에 참여하도록 초대받았으니 함께 기뻐하며 작은 자가 됩시다!
오늘 저희 프란치스칸들은 모든 프란치스칸 성인성녀들을 기립니다. 시대의 작은 빛으로 산 신앙의 영웅들이지요. 우리도 그 대열에 참여하도록 초대받았으니 함께 기뻐하며 작은 자가 됩시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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