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0년 1월 18일 연중 제1주간 토요일

dariaofs 2020. 1. 18. 12:59



오늘 미사의 말씀에는 두 부르심이 등장합니다. 우리가 마태오 사도로 알고 있는 세리 레위, 그리고 이스라엘의 첫 임금인 사울의 부르심입니다.

"그 뒤에 길을 가시다가 세관에 앉아 있는 알패오의 아들 레위를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마르 2,14).
방금 예수님은 호숫가에서 군중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런데 하느님 나라와 예수님 말씀에 목말라 모여든 이들 중에서 제자의 재목감을 뽑으셔도 될텐데, 굳이 한창 세관에서 돈을 만지며 일하고 있는 레위에게 눈길을 주십니다. 그리고 당신을 따르라고 말씀하시지요.

제1독서는 주님께서 당신이 뽑은 이스라엘의 첫 임금을 사무엘에게 소개하시는 대목입니다.

"이 사람이 내가 너에게 말한 바로 그 사람이다. 이 사람이 내 백성을 다스릴 것이다"(1사무 9,17).

앞으로 사울이 어떻게 하느님에게서 돌아서는지 뒷일을 모르지 않는 우리로서는 이 말씀 앞에서 큰 반가움이나 기대감이 일어나지 않습니다만, 하느님은 그렇지 않으십니다.


지금 하느님은 당신의 백성에게 선물할 첫 임금을 사무엘에게 소개하시며 설레고 기뻐하십니다. 모든 부르심에는, 부르심을 받는 사람이 누구든, 이렇듯 하느님의 기대와 축복이 담겨 있습니다.

주님은 민족들의 혈세를 짜내어 제 배를 채우고 로마인 앞잡이 노릇을 했던 레위의 과거를 보시지 않고, 앞으로 주님께 불순종할 사울의 미래를 보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소위 거룩하고 완벽히 성실한 이들보다 약하고 죄인인 이들을 눈여겨 보시고 그들을 부르심로써 그들에게 새 삶의 문을 열어 주십니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마르 2,17).

세리와 죄인을 아우르시는 예수님에 대해 바리사이파 율법 학자들이 볼멘 소리를 하자 예수님께서 당신의 의지를 명확히 밝히십니다.


스스로 건강하다고 여기는 이들에게 의사가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스스로 의인이라 자부하는 이들은 구원자 예수님이 필요 없습니다.


그들은 스스로의 노력으로 구원을 쟁취할 수 있다고 여길 테니까요. 예수님은 힘 있고 부유하고 지식 넘치고 교양 있고 처세술마저 출중한 이들의 우두머리로 오신 것이 아니라 세리와 죄인들, 창녀와 병자들의 친구로 오셨습니다.

독서에서 사무엘이 사울에게 놀라운 사실을 밝힙니다.

"주님께서 당신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그분의 소유인 이스라엘의 영도자로 세우셨소"(1사무 10,1).

기름부음은 정화와 하느님 영의 현존으로 이어집니다. 이는 받는 이의 인간 됨됨이나 능력에 기인하기보다 하느님의 선택에 따른 은총입니다. 그러니 누구도 부르심 앞에서 제 자랑을 할 수 없습니다.

우스갯소리로 "많이 알면 다친다"는 말이 있지요. 너무 꼬치꼬치 다 알려고 하지 말고 적당히만 알고 있어야 안전하다는 뜻 같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부르심과 응답이 이른바 "알면 다치는 길"로 들어섬이 아닐까 싶습니다.


적당히 신자 타이틀만 단 채, 세상의 잇속과 성공도 적당히 누리는 선을 넘어서면, 버림과 따름, 조롱과 모욕, 몰이해와 박해, 십자가와 죽음의 길이 펼쳐지니까요.

예수님 말씀과 가르침에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세상 논리에 야합하기 어렵기 때문에 어쩔 수 없습니다.


물질과 힘이라는 우상숭배를 거슬러 역행하는 삶이란 결코 녹록치 않으니까요. 그래서 수많은 순교자와 증거자들이 교회 역사 갈피마다 존재하는 것이고요.

하지만 주님을 알아갈수록, 그분을 사랑할수록 다친다는 것, 그로써 입는 상처는 놀랍게도 감미롭습니다. 감미로운 고통, 달콤한 십자가...


이는 무슨 자학적이고 자기파괴적인 착각이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따르고 그분과 하나되는 길, 그분과 일치 상태에 머무르는 삶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부르심에 응답하여 오늘 주님의 길을 걷고 계시는 여러분을 축복하고 응원합니다. 기름부음으로 주님의 영과 하나되어 기도와 선행의 은사를 살아가는 여러분을 존경합니다.


우리를 부르시는 주님께는 우리의 때 묻은 과거도, 실패로 점철될 미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분은 오로지 주님께 희망을 두고 살아가는 죄인인 우리의 "지금 여기"를 보십니다.


그러니 레위처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따랐던 응답의 순간부터 그분과 구원의 여정을 엮어 갑시다. 구원은 지금 우리에게 현재진행형입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