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미사의 말씀에서는 하느님을 믿는 이의 당당함이 부각됩니다.
제1독서를 먼저 봅니다. 유명한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입니다.
"너는 칼과 표창과 창을 들고 나왔지만, 나는 네가 모욕한 이스라엘 전열의 하느님이신 만군의 주님 이름으로 나왔다"(1사무 17,45).
소년 다윗이 전장 한가운데로 나아가 필리스티아 거인 장수 골리앗과 마주합니다. 한눈에 보기에도 상대가 될 것 같지 않게 육체적으로 왜소하지만 다윗은 주눅들지 않고 당당합니다. 그건 그가 하느님을 단단히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칼이나 창 따위로 구원하시지 않는다 ... 전쟁은 주님께 달린 것이다"(1사무 17,47).
어린 소년이지만 다윗의 믿음은 허황되지도 두서없지도 않습니다. 그는 만물의 주인, 세상만사의 주인, 인간 운명의 주인이신 하느님의 주도권을 확신하면서 그분께 전적으로 의탁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손에 칼도 들지 않고 그를 죽인 것이다"(1사무 17,50).
하느님은 다윗의 믿음을 배반하지 않으십니다. 기름부음받아 주님의 영 안에서 살아가는 소년 다윗은 하느님의 힘으로 필리스티아 장수를 무찌르고 이스라엘에 승리를 안겨 주었습니다.
이로써 온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진정 하느님께서 손수 지켜주시는 하느님 백성임을 확인하지요.
복음 대목은 예수님이 안식일에 회당에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쳐주시는 내용입니다.
"그곳에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마르 3,1).
예수님을 고발할 구실을 잡으려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으니, 사실 현장의 분위기는 썩 좋지 않습니다. 그래도 예수님 눈에는 가장 먼저 몸이 불편한 그 사람이 눈에 띈 것 같습니다.
"일어나 가운데로 나와라"(마르 3,3).
예수님은 위험을 피하려 뒤에서 슬쩍 치유를 일으켜 주시거나, 이번만 그냥 외면하고 넘어가거나 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정면으로 사람들의 악한 생각에 맞서 그들 한가운데서 당신 존재와 하느님의 권능을 드러내십니다.
숨거나 피하지 않는 예수님처럼 손이 오그라든 사람도 자신의 부끄러운 장애를 사람들 눈에 드러내야 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거저 얻는 기적은 없습니다.
"그분께서는 노기를 띠시고 ... 그들의 마음이 완고한 것을 몹시 슬퍼하시면서"(마르 3,5).
복음사가는 이 대목에서 예수님의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냅니다. 노기는 노여운 기운, 곧 분노와 흡사합니다. 그런데 사람의 분노가 곧잘 폭언이나 폭력으로 표출되는 것에 비해, 예수님의 분노는 깊은 슬픔으로 옮아감을 알 수 있습니다.
깊은 슬픔. 어쩌면 이는 마음이 완고해져 형제의 고통에 관심을 꺼버린 사람들에 대한 격한 연민과 안타까움일 것입니다.
예수님 편에서는 그 완고한 자들까지도 당신의 사랑하는 형제들이기에 그들이 밉기보다 그들의 죄악이 아프고 슬프실 따름입니다. 예수님의 연민은 육신이 굳어버린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영혼이 굳어버린 사람에게도 거세게 흘러갑니다.
회당에서 당신을 고발하려고 노리는 무리 앞에 서신 예수님의 모습과 오늘 독서의 다윗이 겹쳐보입니다. 마치 골리앗처럼 버티고 선 제도권의 종교 권력자들 앞에서 예수님은 물러서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오직 하느님께 믿음을 두고 계시기에 흔들리지도 위축되지도 않으십니다. 그분의 당당함은 교만이나 오만에서가 아니라 진실한 자기 인식에서 나오는 겸손입니다.
"손을 뻗어라"(마르 3,5).
오그라든 한쪽 손처럼 마음과 존재가 움츠러 들었던 그 사람에게 예수님께서 명령을 내리십니다.
그로서는 불편하고 부끄러운 몰골로 회당 가운데에 나와 선 것도 난처한 일인데, 이제는 거기에 더해서 이제껏 오그라들어 있던 감추고 싶은 손까지 내밀어야 합니다.
"그가 손을 뻗자, 그 손이 다시 성하여졌다"(마르 3,5).
그가 손을 뻗습니다. 아니, 뻗어 봅니다.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일단 예수님을 믿고 본 것이지요.
하느님께 대한 믿음으로 그 자리에 서 계신 예수님처럼, 그 역시 자기 안에 있는 희미하고 미소한 믿음을 싹싹 끌어모아 굳어있던 손을 힘껏 내뻗습니다. 이로써 믿음은 그의 것이 되었습니다.
"바리사이들은 나가서 곧바로 헤로데 당원들과 더불어 예수님을 어떻게 없앨까 모의를 하였다"(마르 3,6).
섞일 일 없었던 종교 권력과 정치 권력이 이 기회에 하나가 됩니다. 이는 화합이 아니라 야합일 겁니다. 거대한 악의 기운 앞에 선 예수님이 마치 오롯한 믿음으로 나아간 순결한 소년 다윗 같습니다.
"그분은 나의 힘, 나의 산성, 나의 성채, 나의 구원자, 나의 방패, 나의 피난처"(화답송).
이 노래는 다윗과 이스라엘의 노래입니다. 또 손이 오그라들었던 이와 예수님의 노래이기도 하지요. 이것이 또한 나와 벗님의 노래이길 희망합니다.
사랑하는 벗님! 살다 보면 피할 수 없는 극한 고통에 삼켜지기도 합니다. 두려움과 절망, 슬픔으로 무너질 때도 있지요. 하지만 바로 이때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하시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악의 무리에게 당신을 드러내십니다.
동시에 우리에게도 숨어있지 말고 가운데로 나와 서라고, 손을 뻗으라고 이르십니다. 그 말씀에 순종하는 순간, 이 노래는 나의 노래가 될 것입니다. 아멘.
오상선 바로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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