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미사의 말씀은 하느님과 인간의 시각 차이를 드러내 주십니다.
"보십시오. 저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합니까?"(마르 2,24)
바리사이들의 도끼눈이 보이십니까? 예수라는 젊은 예언자와 그 추종자들이 보여주는 새로운 길에 큰 부담을 느낀 바리사이들은 그들에게서 무엇이라도 흠을 찾으려 혈안이 된 듯합니다.
고작 밀밭 사이를 지나다가 밀이삭을 뜯어 먹는 장정들의 행위를 추수에 준하는 노동으로 보니 말입니다.
예수님은 에브야타르 사제(실은 아히멜렉 사제; 1사무 21,7 참조) 때 다윗이 한 일을 들어 그들의 편협한 사고에 균열을 일으키십니다.
그들의 경직된 논리로라면 이스라엘 자손들이 성왕으로 받드는 하느님의 사람 다윗도 안식일 법이나 어기는 천하의 죄인일 따름입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마르 2,27).
안식일은 하느님께서 6일 동안 세상을 창조하신 뒤 일곱째 날에 쉬신 것을 대대로 기념하여 지키는 날입니다.
또한 주인뿐 아니라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종, 노예, 이방인, 짐승, 토지까지도 쉬도록 정하신 날이지요. 그러니 안식일의 근본 정신은 생명 존중과 공정, 자비와 사랑입니다.
예수님께 올가미가 된 안식일 법은 사실 사랑의 법입니다. 사랑하고 있다면 헤이한 이들 때문에 법이 무너질까 우려하기보다, 경직된 법 때문에 사람이 다칠까 염려하기 마련이지요.
안식일은 인간이 인간다움을 더욱 충만히 누리도록 마련된 날이지요.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허락하신 휴식은 게으름이나 무기력이 아니라 생명력을 회복하여 창조를 완성하고,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성을 돈독히 하는 선물입니다.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마르 2,28).
이 말씀을 하시는 예수님께 머무릅니다. 그분은 당신이 누구이신지 당당히 밝히고 계십니다. 그분은 모든 쉼의 주인이십니다.
쉼의 주인은 창조의 주인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창조의 주인은 만물의 주인입니다. 예수님은 세상 창조 때부터 아버지와 함께하셨고,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해 생겨났습니다.
제1독서는 다윗이 기름부음을 받는 대목입니다.
"나는 사람들처럼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지만 주님은 마음을 본다"(1사무 16,7).
사무엘이 이사이의 아들들 중 겉모습이 훤칠한 엘리압에게 눈길을 줄 때 주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무엘 선견자가 아무리 하느님과 가깝다 해도 그의 시각 역시 사람의 눈일 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사무엘은 ... 형들 한가운데에서 그에게 기름을 부었다"(1사무 16,13).
막내 다윗은 애초에 이 자리에 끼지도 못한 처지였습니다. 사무엘의 초대에 아버지 이사이조차 다윗을 염두에 두지 않을 정도로 존재감이 없는 어린 소년에 불과했지요. 그런 그가 형들 한가운데에서 기름부음을 받게 됩니다.
그때 형들 마음이 어땠을지 성경이 굳이 설명하지는 않지만 일단은 당황스럽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이 아이다." 하는 주님의 목소리가 사무엘에게만 들렸을 테니 형들은 그저 이 놀라운 일을 바라볼 수밖에요.
선견자를 통한 하느님의 선택을 경외하면서도 막내동생이 받은 임금의 표지, 기름부음에 대해 의혹과 의심, 시기와 질투도 없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인간적 눈에 막내는 작고 약하고 미숙한 존재로밖에 비치지 않을 테니까요.
인간의 시선이 한계투성이라 그렇습니다. 우리 눈은 겉모습에, 허울에, 장식에 곧잘 팔려 본질을 놓쳐 버리기 일쑤입니다.
이렇게 사람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지만, 하느님은 '마음'을 보십니다. 복음의 바리사이들은 율법의 이행 여부에 눈을 치켜뜨지만 예수님은 율법의 정신을 사십니다.
그래서 복음 환호송은 이렇게 외치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저희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시어 부르심을 받은 저희의 희망을 알게 하여 주소서"(에페 1,17-18 참조).
그렇습니다! 우리 눈은 주님께서 뜨게 해 주시고 밝혀 주셔야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 떠야 할 눈은 마음의 눈입니다.
인간의 시력 검사는 얼마나 멀리, 얼마나 또렷하게 보느냐를 측정하지만, 마음의 눈의 시력은 얼마나 깊이 보는지, 얼마나 참되게 보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으로 보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사랑하는 벗님! 오늘 축일을 지내는 아녜스 성녀처럼, 주님께서 밝혀 주신 마음의 눈으로 세상 한가운데서 사랑을, 주님을 발견하는 하루 되시길 축원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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