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미사의 말씀에서 우리는 주님을 믿고 사랑하는 이에게 주시는 최고의 선물을 만납니다. 그 선물은 다름이 아니라 "자유"입니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요한 8,31-32).
말씀, 머무름, 제자, 진리, 자유!
이 문장 안에는 축약하거나 뭉뚱그릴 수 없을만치 소중한 단어들로 가득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에 머무르면 제자가 되어 진리를 깨닫고 자유를 누리리라고 선언하십니다.
"우리는 ... 아무에게도 종노릇한 적이 없습니다"(요한 8,37).
진리가 자유롭게 한다는 말에 유다인들이 발끈합니다. 자유로이 하느님의 뜻을 찾아 숙고하고 적용하는 대신, 이미 정답으로 주어진 율법에 맹목적으로 매여 살다 보니 자유와 부자유의 차이조차 망각한 듯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종은 단순히 신분적으로 예속된 상태만을 가리키지 않지요. 아버지께서 보내신 성자를 믿지 않고 배척하는 이는 율법과 관습의 종입니다.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을 자리"(요한 8,37)
예수님은 종과 아들, 노예와 자유인의 차이가 존재의 내면에 말씀을 품을 자리가 있느냐 없느냐에 달렸다고 과감히 말씀하십니다.
자기 안에 말씀을 간직한 이는 말씀이신 분을 알아볼 뿐만 아니라 그 말씀과 하나 되어 무엇이든 말씀께서 기뻐하실 일을 합니다. 의무나 책무로 움직이지 않고 사랑하기에 자유로이 나아갑니다.
제1독서는 바빌론으로 유배갔다가 왕궁에 발탁된 세 청년이 우상숭배를 거부하자 불가마에 던져지는 무시무시한 대목입니다.
"다친 곳 하나 없이 불 속을 거닐고 있다. 그리고 넷째 사람의 모습은 신의 아들 같구나"(다니 3,92).
이 말은 해설자나 일반 목격자의 입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 이 흉포한 일을 지시한 네부카드네자르 임금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이기에 더욱 힘이 있습니다.
세 청년은 생사고락을 비롯해 온 존재를 하느님께 의탁하였기에 진정 자유롭습니다.
고수하고 움켜쥐어야 할 자기 것이 하나라도 있었다면 자유로울 수 없지요. 그리고 자유로운 이는 설령 불가마 같은 시련과 고통의 도가니에 던져진다 해도 상처를 입지 않으리라는 의미입니다.
"그분께서는 ... 저희를 구해 내실 것입니다 ...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다니 3,18)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그들의 자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구해 주시리라는 것을 의심의 여지없이 굳게 믿지만, 설령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괜찮습니다. 모든 일과 사건이 하느님의 뜻, 하느님의 영광을 향하고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바라는 대로 되지 않으면 하느님을 마치 빚쟁이 다루듯 다그치고 토라지고 실망하는 얕은 속으로는 감히 이해하기조차도 버거운 믿음일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너희 아버지시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할 것이다"(요한 8,42).
누가 아들인지 종인지, 자유인인지 노예인지가 판가름 되는 기준은 사랑입니다. 세상 구원을 위해 당신의 목숨을 바치러 오신 아드님을 믿고 감사하고 사랑하는 이는 인종, 신분, 국적, 빈부, 직업에 관계 없이 하느님의 자녀이고 자유인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여러분! 부활의 여명을 고대하며 더 짙은 어두움에 잠긴 이때, 말씀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실 자리를 마련하고 실제로 그분을 모셔들입시다.
하루종일 다가오신 말씀을 되씹고 곱씹으며 머무르는 사이 우리는 그분을 더 믿고 더 사랑하게 됩니다. 믿음과 사랑이 견고히 성장한 이들은 삶의 필요와 요구, 바람 앞에서 설령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주님께 대한 믿음과 사랑에 흔들림이 없습니다.
다친 곳 없이 불 속을 거닐 수 있습니다. 오늘 주님 안에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사랑으로 충만하실 벗님을 축복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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