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0년 4월 3일 사순 제5주간 금요일

dariaofs 2020. 4. 3. 06:09




                 미켈란젤로의 예레미아 그림


오늘 미사의 말씀은 하느님과 예수님, 하느님과 예레미야의 굳건한 신뢰 관계를 보여 줍니다.

"나는 아버지의 분부에 따라 너희에게 좋은 일을 많이 보여 주었다"(요한 10,32).

아버지에게서 파견되신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행하셨습니다. 그분은 질병과 마귀, 절망과 죽음에 시달리던 세상 사람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선사하셨습니다.


길을 터 주시고 진리를 알려 주셨지요. 아버지와 하나이신 성자 예수님 그분이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니까요.

"당신은 하느님을 모독하고 있소"(요한 10,36).

하지만 유다인들은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면서 아버지에게서 파견받은 신원을 밝히시는 예수님이 못마땅합니다.


그저 단순히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는 예언자였거나 기적을 행하는 치료사나 마술사 정도였다면 이처럼 날을 세우지 않았겠지요. 그 편이 예수님께 훨씬 안전할 터입니다. 예수님도 이를 모르지 않으셨을 겁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요한 10,38).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귀를 만족시킬 말씀을 하지 않으십니다. 당신과 아버지의 관계를 오히려 더 진실되게, 더 깊이 계시하시지요. 두 존재가 서로의 안에 존재한다는 것은 일치의 다른 표현으로 들립니다.


 성부, 성자의 각각의 위격으로 보자면 강한 결속이 되겠고, 삼위일체이신 한 하느님으로 보자면 완전한 일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 요한이 세례를 주던 곳으로 물러가시어 그곳에 머무르셨다"(요한 10,40).

예수님은 세상의 배척을 뒤로 하고 요르단강 건너편으로 가십니다. 당신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을 때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르 1,11)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었던 곳입니다.


예수님은 원체험의 그 공간에, 아버지와 깊은 사랑의 신비를 체험한 그 순간에 머무르십니다. 지금 예수님께는 아버지밖에 없습니다.

제2독서에서는 복음 속 예수님과 비슷한 기류를 겪고 있는 예레미야가 등장합니다.

"가까운 친구들마저 모두 제가 쓰러지기만 기다리고 있습니다"(예레 20,10).

예언자의 운명을 살아간 다른 많은 예언자들 중에서도 특히 예레미야가 겪었던 핍박과 고난 이야기는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가 겪었던 상황들과 하느님께 올린 그의 고독한 절규와 청원은 예수님의 처지를 잘 대변해 주고 있지요.

"주님께서 힘센 용사처럼 제 곁에 계시니"(예레 20,11).

이것이 바로 하느님과 엮인 예레미야의 신뢰입니다. 군중의 모해와 음모의 칼끝이 목덜미에 닿는다 해도 뒤집지 않을 충실함입니다. 그만큼 주님을 믿고 사랑하기에 가능한 결기일 겁니다.

사랑하는 벗님! 예수님의 수난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전염병으로 인한 세상의 고난도 깊어갑니다. 미사 무기한 연기라는 교회의 고뇌에 찬 결정이 서운할 수도 반가울 수도 없는 현실입니다.


그저 이 상황에 대한 모든 개인적 감정과 판단을 유보하고, 다만 주님 마음에 기대어 그분 말씀에 머무릅시다. 지금은 성전이 아닌 외딴곳으로 떠나셔서 머무르시는 예수님 곁으로 우리도 몰려갑시다.


거기서 아버지와의 사랑을 되씹고 곱씹으며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를 드립시다. 하느님은 성전에 모일 수조차 없는 우리가 바치는 사랑의 기도를 더 귀하게 들어 주실 겁니다. 아멘.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