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0년 4월 5일 주님 수난 성지 주일 - 오상선 신부

dariaofs 2020. 4. 5. 05:44



성주간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늘미사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겪으실 수난과 죽음을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여주고 있습니다.

"얼굴을 땅에 대고 기도하시며"(마태 26,39)

예수님께서 겟세마니라는 곳에 가셔서 아버지께 기도하십니다.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는 것은 종이나 노예, 포로들이 취할 법한 자세인데, 예수님께서 친히 아버지 앞에 엎드리셨습니다. 그만큼 절실한 순간에 다다른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마태 26,39).

복음사가는 이 말씀에 도달하기까지의 예수님의 고뇌를 모른 체 건너뛰지 않습니다.


약한 우리 인간처럼 그분도 근심과 번민으로 괴로워 죽을 지경이라고 하셨지요. 루카 복음사가는 이 고통을 "땀이 핏방울처럼 되어 땅에 떨어졌다"(루카 22,44)고까지 표현합니다.

"원하시는 대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를 아십니다. 그분의 계획과 사랑과 고뇌를 아십니다.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 위해 당신이 겪어야 하는 과정도 모르시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 의지에 나의 의지를 포함시키는 것입니다. 그저 끼워넣는 것과는 다른 차원입니다. 내 의지가 그분 의지 안에 녹아 형체도 없이 사라지게 하시는 것입니다.

제1독서는 이사야서에 나오는 "주님의 종의 셋째 노래"입니다.

"나는 거역하지도 않고 뒤로 물러서지도 않았다"(이사 50,5).

누구라도 모욕과 수모는 피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그게 자연스럽기도 하고 정상으로 보이지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그 모두를 기꺼이 받아 안기 전까지는 그랬습니다.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니 나는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이사 50,7).

주 하느님께 의탁하면 아무리 심한 모욕과 수모가 쏟아져도 나를 작아지거나 비참하게 만들 수 없습니다. 당장 인간적으로는 곤욕스러우나 원천도, 과정도, 지향도 하느님일 경우에는 부끄러울 것이 없습니다.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예수님의 이러한 모습을 요약하여 들려줍니다.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필리 2,8).

순종.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시라는 예수님의 기도는 순종의 기도입니다. 종의 모습으로 자신을 낮출 대로 낮추시고는, 지금은 마치 아들이 아니라 종인 듯 아버지께 전권을 드리십니다. 아버지께서 주셨던 모든 권한을 되돌려 드리십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유다의 배반으로 촉발되었지요. 그래서 유다가 받았다 되돌려 준 은돈 서른 닢을 두고 수석 사제들은 "피 값"(마태 26,7)이라 이야기합니다.


결국 그들은 성전 금고에 넣을 수 없는 그 돈으로 "옹기장이 밭을 사서 이방인들의 묘지로 쓰기로"(마태 26,7) 합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예수님의 피의 값이 "이방인의 묘지"가 됩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이스라엘을 넘어 온 인류에게 영원한 안식처를 제공하게 된 것입니다. 게다가 그 땅은 본래 "옹기장이 밭"이었다고 하지요.

"옹기장이 손에 있는 진흙처럼 너희도 내 손에 있다"(예레 18,6).

여기서 옹기장이는 하느님을 비유합니다. 그렇다면 옹기장이의 밭은 하느님께서 소유하신 온 세상이 되겠지요. 결국 예수님께서 죽기까지 순종하신 공로로 원래 하느님 소유였던 모든 민족들이 하느님의 땅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됩니다.


그것도 유다의 수석 사제들, 원로들의 협력으로 말이지요 모르고 한 그들의 행위가 더 큰 그림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실현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이제 예수님의 고뇌와 수난에 깊이 머무르는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비록 전례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 하더라도, 말씀 안에서 주님과 생생히 동행합시다.


지난 3월 마지막 금요일 새벽에 온라인을 통해 참여한 교황님과의 성체강복에서 우리는 그 가능성을 체험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품고 주파수를 주님께 맞추고 있으면 가능한 신비입니다. 그분께서 원하시니까요. 그러니 우리, 힘내어 성주간을 걸어갑시다!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