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미사의 말씀은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준비합니다.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해 죽는 것이 더 낫다는 사실을"(요한 11,50).
대사제 가야파의 입에서 하느님의 의중이 흘러나옵니다. 그 해의 대사제로서 예언한 것일 뿐 그의 생각이 아닙니다.
이로써 예수님의 운명이 결정됩니다. 인간이 하느님의 뜻을 온전히 깨닫지 못하더라도,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무지를 통해 당신의 일을 이루어 가십니다.
"한 사람"
이 한 사람이 곧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유다인은 이 "한 사람"을 죽이려 하지만, 실상 그 죽음을 통해 그 "한 사람"이 온 민족을 멸망에서 구원할 것입니다.
그 한 사람에 대해서는 제1독서에서도 각기 다른 표현으로 반복해 이야기합니다.
"한 임금이 그들 모두의 임금이 되게 하겠다"(에제 37,22).
"그들 모두를 위한 유일한 목자가 될 것이다"(에제 37,24).
"영원히 그들의 제후가 될 것이다"(에제 37,25).
주 하느님께서 유배에 지친 이스라엘 백성을 "사방에서 모아다가 그들의 땅으로 데려가겠다"(에제 37,21)고 하시면서, 한 임금, 유일한 목자, 영원한 제후를 약속하십니다.
요한 복음서 저자는 카야파의 말에 등장하는 그 "한 사람"이 "민족을 위하여 돌아가시는 것"에 그치지 않고,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시려고 돌아가시리라는 것"(요한 11,52)이라는 신학적 해석을 덧붙입니다.
한 분이고 유일하며 영원한 메시아, 하느님의 아들은 단 한 번의 죽음으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모든 민족을 살리실 것입니다.
"나의 거처가 그들 사이에 있으면서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에제 37,26).
성경의 갈피마다에서 마주치는 하느님의 갈망은, 당신의 영광을 내려놓고서라도 기어이 백성 틈에 거처를 마련하시겠다는 의지입니다.
늘 모자람 없이 홀로 충만하신 그분이 먼저 인간에게 말을 걸어 오시고 하느님이 되어 주시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같이 살자고 하시는 겁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하였다"(요한 11,53).
사람들 틈에 들어오셔서 거처를 마련해 함께 사시는 주님을 사람들은 가장 교묘하고 잔인하며 치욕적인 방식으로 내쫓으려 합니다. 우리 주님은 이렇듯 외짝 사랑꾼이실 때가 더 많습니다.
"새 마음과 새 영을 갖추어라"(복음 환호송).
충실히 야훼 하느님을 섬기며 율법을 철저히 준수하는 유다인들에게 하나 부족한 게 있다면 새로움에 대해 완고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시작하신 "새 일"(이사 43,19)에 눈과 귀를 막은 채, "묵은 것이 좋다"(루카 5,39)며 옛 포도주에 취한 상태로는 새 포도주는 안중에도 없을 테니까요.
사랑하는 벗님! 올해 사순시기와 부활시기는 우리에게 참으로 낯설게 다가옵니다. 우리를 회개와 보속으로 이끌어 주던 전례는 물론, 함께함을 통해 서로를 자극하고 성장시키던 공동체적 활동도 그쳐버렸습니다.
하지만 인류적 위기의 터널을 지나며 단순히 옛 것의 향수에 젖어있기보다, 이번 사순시기와 부활시기에 우리에게 허락하신 새로움은 무엇일지 숙고한다면 그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벗님! 그러니 잊지 맙시다. 옛날 어느 때와 비교해 좋았는지 나빴는지보다 중요한 건 지금 직면한 새로움에서 깊숙히 묻혀 있던 보물을 파내는 것입니다.
우리에겐 새롭게 다가오시는 예수님이 그 보물이고, 말씀이 보물입니다. 오늘도 그 보물을 발견하고 기뻐하는 복된 날 되소서.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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