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미사의 말씀은 우리에게 영광이 무엇인지 묻습니다.
"제자들은 누구를 두고 하시는 말씀인지 몰라 어리둥절하여 서로 바라보기만 하였다"(요한 13,22).
예수님께서 유다의 배반을 예고하시자 제자들이 동요합니다. 수백 명도 아니고 딱 열둘인데, 그 안에서 누군가가 스승님을 팔아넘긴다니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잘못하면 서로 의심하다가 갈등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당사자야 알겠지만 나머지 제자들은 도무지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아무도 몰랐다"(요한 13,28).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유다에게 하신 말씀에 대해서도 역시 영문을 몰라합니다. 예수님과의 최후의 만찬 석상에서 제자들은 정말 모르는 것 투성이입니다.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요한 13,38).
그런데 예수님은 이미 다 아십니다. 제자들의 무지에 대비되는 예수님의 앎이 더욱 선명해집니다.
그런데 그 앎이 우리 마음을 저리게 만드네요. 제자에게 배반 당하실 것을 아시는 앎, 더욱이 수석 제자가 당신과의 관계를 부인하리라는 것을 아시는 앎...
아마 우리 인간에게 이런 앎이 허락되었다면 우리는 평상심은 커녕 제정신으로 관계를 맺으며 살기 어려울 겁니다. 그러니 적당히 모른다는 게 우리 인간 수준에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요.
제1독서는 주님의 종의 둘째 노래 부분입니다.
"그분께서 내 입을 날카로운 칼처럼 만드시고 당신 손 그늘에 나를 숨겨 주셨다. 나를 날카로운 화살처럼 만드시어 당신의 화살통 속에 감추셨다"(이사 49,2).
이상하지요... 날카로운 칼과 화살처럼 벼린다는 것은 전쟁 때 당장 활용할 수 있게끔 만반의 준비를 해놓는 것인데, 제 역할을 서슬 퍼렇게 하라고 보란듯이 내놓아도 모자랄 판에 하느님은 숨겨 두고 감추십니다.
"너에게서 내 영광이 드러나리라"(이사 49,3).
그러면서도 당신의 영광이 드러난다고 하시니 헷갈립니다. 숨기고 감추신 이에게서 무슨 영광이 드러날 수 있을지요. 그래서 예언자는 다음과 같이 푸념을 덧붙입니다.
"나는 쓸데없이 고생만 하였다. 허무하고 허망한 것에 내 힘을 다 써 버렸다"(이사 49,4).
충실히 하느님의 말씀을 전했는데 기껏 돌아오는 거라곤 박해와 조롱 뿐인 예언자들의 처지나, 수난과 죽음을 향해 한 발 한 발 내딛고 계시는 예수님의 처지를 인간적으로 보면 이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내 권리는 나의 주님께 있고 내 보상은 나의 하느님께 있다"(이사 49,4).
하지만 예언자는 이내 마음을 돌이킵니다. 인간적 영화와 주님께서 주시는 영광을 분리한 까닭입니다.
당장 사람들 눈에 예언자를 영광스럽게 보이게 한들 반짝 하고 지나갈 가볍디 가벼운 남의 일일 뿐이니까요. 하느님께서 주시는 영광이란 당장 눈앞에 보이는 성공을 넘어섭니다.
그러니 누가 봐도 영광이라 느끼는 뻔하고 뻔한 것이라면 영광이 아닙니다. 그건 세상이 저희끼리 주고 받는 거래요 자기만족일 뿐입니다.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다시 일으키고 이스라엘의 생존자들을 돌아오게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나의 구원이 땅 끝까지 다다르도록 나는 너를 민족들의 빛으로 세운다"(이사 49,6).
눈에 보이는 영광이 아니라 감추어진 진정한 영광을 주시려는 하느님의 뜻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분께서 이스라엘의 하느님으로서 당신 백성에게 승리와 탈환의 기세등등한 영광을 안기신다면 그건 그 민족에게서 끝날 일입니다. 이민족 입장에서 놀랄 것도 감사할 것도 없는 당연지사일 겁니다.
"이제 곧 그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요한 13,32).
우리의 예수님은 구원의 포문을 이스라엘 너머로 열어젖히십니다. 뻔한 영광이 아니라 가장 수치스러운 자리를 선택하심으로써 진정한 임금의 자리를 탈환하신 영광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이사야서에서 이야기하듯, 구원의 지평을 활짝 열어 "땅끝까지 이르는 모든 민족들의 빛"이 되십니다.
사랑하는 벗님! 우리는 영광의 주님을 십자가에서 봅니다. 가장 비참하고 처절한 순간까지 떨어지신 그분은 "영광"의 세속적 한계를 치우시고 그 범위를 극한대로 확장하셨습니다. 저 하늘 끝에서 저 깊은 땅속 끝까지 주님의 영광이 가득합니다.
장엄하고 화려하고 강하고 충만한 곳에서 영광을 보기는 쉽습니다. 하지만 우리 믿는 이들은 초라하고 비참하고 약하고 텅 빈 곳에서 진정한 영광을 보는 이들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주님이 그곳에 매달려 계시니 그 영광에 동참하러 함께 달려갑시다. 십자가를 더 깊이 사랑하는 오늘 되시길 축원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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