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0년 4월 9일 주님 만찬 성목요일

dariaofs 2020. 4. 9. 05:57



파스카 성삼일을 여는 주님 만찬 미사의 말씀은 사랑을 향합니다.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요한 13,1).

예수님께서 아버지께로 건너가실 때가 온 것을 아시고 제자들에게 더 큰 사랑해 쏟아주십니다. "끝까지!" 이 말씀 안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지상에 머무르시는 마지막 순간까지"를 의미하기도 하고, 당신의 모든 사랑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다 내어 주신다는 의미기도 할 겁니다.


또 구원을 갈망하나 스스로 구원할 능력도 자격도 없는 우리를 영원한 생명에 이르기까지, 끝까지 책임지신다는 뜻도 될 겁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고"(요한 13,5)

예수님께서 무릎을 꿇고 허리를 굽혀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십니다. 종이나 노예가 하는 일을 기꺼이 자원해서 하시는 겁니다.


발은 직립하는 인간 특성상 가장 아래에 있는 지체이고, 물리적으로 먼지와 흙과 땀으로 더럽혀지기 쉬운 부위기도 하지요.


그곳을 물로 깨끗이 씻고 수건으로 정성껏 닦아주시는 예수님 마음 안에는, "너의 가장 더럽고 약하고 낮은 부분을 내가 손수 닦아 주마" 하시는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 함께 아무런 몫도 나누어 받지 못한다"(요한 13,9).

체면 치레건, 부끄럽고 수치스러워서건, 면목이 없어서건, 아니면 자존심 때문에 불편해서건 어떤 이유로든지 예수님의 정화의 손길을 거부하는 이는 구원의 열매를 나누어 받지 못합니다.


얼핏 "저는 괜찮으니 다른 사람이나..." 하며 예수님의 수고를 덜어드리는 예의로 보이지만 실상은 우리 존재 안으로 더 깊이 들어오시려는 예수님을 밀어내는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더럽고 민망하고 부끄러운 곳을 정화하고 치유하고 자유롭게 해주길 원하시는데 말입니다.

제1독서는 이집트 탈출의 결정적 사건이 될 열 번째 재앙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너희가 있는 집에 발린 피는 너희를 위한 표지가 될 것이다"(탈출 12,13).

하느님의 분부대로 이스라엘 백성 집에 발린 피는 그들을 구원할 표지가 됩니다. 그 피가 묻은 집은 죽음도 어떤 재앙도 비켜가리라고 하느님께서 약속하시지요.

구약 이스라엘 백성을 살린 어린양의 피는 예수님께서 친히 어린양이 되시어 바치신 완전한 희생제사로 완성됩니다. 우리는 물리적으로 얼굴이나 몸, 집에 피를 바르지는 않지만, 그 피의 표지는 지울 수 없을 만큼 확연히 존재에 새겨져 있습니다.

"너희는 깨끗하다"(요한 13,10).

복음으로 돌아가서, 제자들을 격려하시는 예수님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자신을 아무리 좋게 봐주려 해도 부족하고 불결하고 비천한 죄인에 불과한 현실에 풀이 죽는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선언하십니다. 그런데 이 깨끗함은 우리 스스로 이루어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정화하고 정결케 하며 거룩하게 합니다. 그분의 피는 온갖 죄악에도 불구하고 죽음의 힘이 우리를 거르고 지나가게 하는 표지입니다.


그 피가 곧 사랑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입은 이는 그 사랑이 존재에 묻고, 뼛속까지 스며들어 그 사랑과 분리될 수 없습니다.

제2독서에서는 최후의 만찬 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울려퍼집니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1코린 11,24.25).

예수님께서 당신의 몸과 피를 우리가 취하도록 내어 주시며 반복해 이르십니다. 기억은 우리를 구원할 또 다른 표지입니다.


사랑의 순간이 영혼 깊숙이 상처처럼 각인된 이는 사랑의 기억이 건드려질 때마다 그 통증으로 나날이 전율하고 벅차오릅니다. 감출 수 없는 이 기억은 행함으로, 참여로, 연대로 물살처럼, 파도처럼 퍼져나갑니다.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요한 13,14).

결국 이 표지는 사랑으로 귀결됩니다. 사랑으로 구원된 우리는 사랑의 도구가 되도록 이끌립니다.


주님의 순결한 피로 구원되었고 사랑의 기억으로 타오르는 우리는 주님처럼 무릎을 꿇고 허리를 굽혀 구원이 절실한 또 다른 누군가에게 주님의 사랑을 묻혀주고 스며들게 합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남기고 가신 사랑의 순환이고, "끝까지 사랑하신" 방식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영과 진리 안에서 주님의 식탁에 참여해 그 사랑을 먹고 마시는 성목요일 만찬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사랑으로 깨끗해진 우리 모두가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예수님이 성체성사를 제정하신 오늘은 그 봉사자인 사제들의 축일이기도 합니다.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가 사제 형제들에게 남기는 권고말씀입니다.

"사제 형제들이여, 여러분의 품위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그분이 거룩하시니 여러분도 거룩한 사람이 되십시오. ...


오, 극의 겸손이여. 오 겸손의 극치여! 우주의 주인이시며 하느님이시고 하느님의 아들이신 분이 이토록 겸손하시어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하찮은 빵의 형상 안에 당신을 숨기시다니! 형제들이여, 하느님의 겸손을 보십시오.


그분이 여러분을 높여 주시도록 여허분도 겸손해지십시오"(형제회에 보낸 편지, 23-28 참조).

사제들의 축일 함께 축하하며, 사제들을 위해 기도하는 하루 되시길 축원합니다. 하느님의 겸손을 잊지 않고 성무봉사를 겸손을 다해 수행하는 거룩한 목자가 되시도록...


사제들도 출애급의 야훼 하느님처럼, 또 최후만찬의 예수님처럼, 애틋한 사랑으로 자기 양 떼를 생명과 구원의 길로 이끌어주어야 하니까요.

여러분에게 꼭 기억하고 기념해야 할 날은 언제인가요? 왜인가요?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