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무덤에 묻고 맞이한 오늘은 온 세상이 텅 빈 듯합니다. 성토요일에 우리는 상주가 되어 님을 떠나보낸 적막감과 공허감으로 하루를 보내지요. 그리고 주님께서 부활하신 거룩한 밤을 기념하는 파스카 성야를 맞이합니다.
"주간 첫날이 밝아 올 무렵"(마태 28,1)
이른 새벽에 여인들이 움직입니다. 그녀들이 어떤 밤을 보냈을지 헤아려 봅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던 님을 잃은 슬픔과 그리움으로 아마도 하얗게 지새웠겠지요. 어서 날이 밝기를 기다리면서 사랑은 한숨도 되었다가 용기도 되었다가 했을 겁니다.
그래도, 아무리 안식일이 지나서 자유로이 다닐 수 있다 해도 동이 터올 무렵 무덤을 간다는 건 예사 행위가 아닙니다. 그녀들을 움직인 건 사랑에서 발화한 용기입니다.
"두려움"(마태 28,4,5,8,10 참조)
오늘의 복음 대목에 가장 빈번히 등장하는 말씀은 두려움에 관한 것입니다. 지진과 천사의 발현을 목격한 경비병들은 두려워 떨다가 까무라치고, 여인들은 천사와 예수님에게서 "두려워하지 마라"는 말씀을 듣지요.
부활을 맞닥뜨린 이들에게 다가온 감정은 기쁨 이전에 두려움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 부활에 대해 누차 말씀을 하셨어도, 죽은 이의 부활은 예전에 없던 일이기에 경이로우면서도 두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가서 내 형제들에게 ... 전하여라"(마태 28,10).
여인들은 천사와 예수님에게서 동시에 "가서 전하라"는 미션을 받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냥 제자들 모인 장소에 발현하셔도 이상할 것이 하나 없지만, 그분은 무덤을 찾아온 이들에게 먼저 당신을 드러내시고는 굳이 그들을 메신저로 파견하십니다.
무덤은 죽음을 증명하는 현장입니다. 지상에서의 마지막 거처이고, 산 이와 죽은 이를 가르는 장소입니다. 충성을 맹세했던 제자들에게는 더 큰 두려움과 절망의 자리일 수도 있겠지요. 바로 그곳에서 만남과 파견이 이루어집니다.
"그 여자들은 두려워하면서도 크게 기뻐하며 서둘러 ... 달려갔다"(마태 28,8).
두려움과 기쁨이 교차합니다. 여인들이 겪은 현상은 두려움을 야기하기에 충분하나, 그녀들이 들은 내용은 그대로 그녀들 안에서 기쁨이 됩니다. 공포가 신비로, 허망함이 환희로 바뀝니다. 무덤을 경험한 이라야기쁨의 전달자도 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벗님!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위기는 두려움을 일으킵니다.
세계가 고통과 죽음의 격류에 휩쓸려 가는 가운데 누구도 안심할 수 없을 만치 생과 사의 경계가 너무 쉽게 허물어져 가고 있습니다. 죽음을 목전에 둔 우리의 현재는 주님을 무덤에 모신 시간과 흡사할 것 같습니다.
모순같지만 부활의 기쁜 소식은 여기 이 무덤가에서 시작됩니다. 여기서 두렵지만 인류에게 닥친 고통을 피하지 않고 직시하며 기도로, 나눔으로, 격려로, 참여로, 희생으로 동참할 때 되살아나신 주님께서 당신을 드러내십니다.
주님 부활은 우리 안에 두려움과 기쁨을 동시에 선사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두려워하지 말고 생명의 기쁨을 전하러 달려갑시다.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알렐루야!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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