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0년 4월 12일 주님 부활 대축일 - 오상선 신부

dariaofs 2020. 4. 12. 05:57



우리는 여느 때보다 더 길게 느껴지는 사순시기를 지나 어느덧 주님 부활을 맞이했습니다.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에"(요한 20,1).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에 간 시간은 새벽녘입니다. "아직 어두울 때"라는 복음사가의 설명은 마리아 안팎의 상태를 가리키지요.


물리적으로도 어둠이 가시지 않은 시간이지만, 예수님을 떠나보내고 발이 묶여 지낸 안식일이 그녀에게 얼마나 길었을지 우리는 공감할 수 있습니다.

"모르겠습니다"(요한 20,2).

그런데 무덤 입구의 돌이 치워져 있고 무덤 안은 빈 것 같습니다. 놀란 마리아가 제자들에게 달려가 상황을 알리지만, 그녀로서도 아는 바가 없습니다. 제일 먼저 현장을 목격한 증인이기는 한데 아직 모든 것이 베일에 싸인 듯합니다.

"사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성경 말씀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요한 20,9).

예수님의 가장 측근이었던 두 제자가 달려와 무덤 안을 살피지만 그들 역시 영문을 모르기는 매한가지입니다. 복음사가는 제자들조차 성경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있음을 가감없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부활 사건은 이미 예수님께서 여러 차례에 걸쳐 예고하셨음에도 제자들이 인식하기에는 너무 크고 깊은 신비입니다. 생명의 주인께서 인간의 한계인 죽음을 정복해 거두신 승리는 이제껏 누구도 이루지 못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주님 부활을 맞아 뭔가 선명하고 확실한 표징을 붙잡고 싶지만, 오늘의 말씀은 아직 안개 속처럼 무지와 모호함이 가득합니다. 그저 그분께서 무덤에 계시지 않는다는 정황이 부활을 암시할 뿐 명확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제1독서는 베드로가 고르넬리우스의 집에서 이방인들에게 설교하는 대목입니다.

"하느님께서 미리 증인으로 선택하신 우리"(사도 10,41).

베드로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을 요약하면서 자신들을 "증인"이라 표현합니다. 빈 무덤 앞에서 영문을 몰라 했던 베드로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승천과 성령 강림까지 체험한 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듯 보이지요.

증인은 처음부터 모든 걸 아는 사람이라기보다, 보고 듣고 체험한 내용이 주님의 개입으로 인식되고 내면화되는 과정을 거친 존재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이 언젠가는 깨닫게 되리라는 걸 아시기에 지치지 않고 반복해서 미리미리 일러 주셨지요.


거기에 더하여 예수님께서 보내 주신 성령께서 제자들에게 기억하게 하시고 일깨워 주셨기에 스승의 죽음 앞에 오합지졸 같았던 제자들이 어엿한 "증인"으로 변모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콜로 3,1).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콜로새 사람들에게 새 삶을 살라고 역설합니다. 그렇게 증인이 된 이는 이처럼 타인에게 자기 삶을 본보기로 하여 말씀을 선포하기에 강한 힘과 설득력이 있습니다.

어쩌면 오늘의 버거운 현실 한가운데를 지나는 우리도 복음 속 등장인물들과 비슷할지 모릅니다. 기약 없는 단절과 멈춤, 일상화된 발병과 죽음, 이별 앞에서 빈 무덤 앞 제자들처럼 무지와 모호함을, 고독과 두려움을 견뎌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동시에 우리도 그들처럼 믿음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죽음의 그늘에서 더욱 확고히 생명을 부여잡고 희망을 견지하는 이는 그간 겪어온 모든 과정을 부활의 시각으로 재해석하고 내면화하여 "증인"으로 탄생됩니다.

사랑하는 벗님! 부활을 어떻게 맞이하셨나요. 화려한 장식도, 생기 넘치는 성가와 환호도, 밝게 축하 인사를 나눌 공동체도 없는 부활절이지만, 여명이 걷히고 나면 우리는 진정한 부활의 증인이 될 것입니다.


함께 견디어낸 고통은 굳은 신뢰와 자부심으로 피어날 것이고, 가슴을 치며 뉘우쳤던 이기주의, 분열주의, 생태계 파괴의 채무는 이웃과 세상을 다시 아름답게 가꾸는 존중과 헌신의 에너지로 탈바꿈할 것입니다.

"아직 어두운 때"지만, 주님 부활과 함께 분명 새 생명이 약동하고 있습니다. 부활의 기쁨은 감정이나 분위기를 넘어서 믿음과 희망이 낳은 선택입니다.


그러니 벗님! 우리,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합시다. 터널 한가운데서, 터널의 끝을 앞당겨 경축하며 감사합시다.

부활을 축하합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