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미사의 말씀에서 저는 마르코 복음사가가 전하는 특별한 메시지에 이끌렸습니다. 현재 인류가 맞닥뜨린 재앙에 대해 말씀이 길을 제시하고 계신 듯 느껴진 것입니다.
마태오 복음과 루카 복음 안의 예수님 부활 메시지에서 복음 선포의 대상이 "모든 민족"(마태 28,19; 루카 24,47 참조)이라면, 마르코 복음에서는 "모든 피조물"로 표현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15).
여기서 제자들에게 제시하시는 선교 활동의 범위는 "온 세상"이고, 그 대상은 "모든 피조물"입니다.
기쁜 소식은 이스라엘을 넘어 온 세상으로 퍼져나가야 하고, 사람뿐 아니라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존재에게 전해져야 한다는 뜻이지요.
복음 앞에서 소외되는 존재는 단 하나도 없어야 합니다. 그것이 온 세상을 사랑하시는 모든 만물의 주인이신 하느님의 뜻입니다.
제1독서는 하느님의 백성이 이 세상에서 수행해야 하는 사명과 태도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베드로의 첫째 편지 중 일부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겸손의 옷을 입고 서로 대하십시오"(1베드 5,5).
원문에서 이 권고는 "젊은이 여러분"이라는 대상에게 주어지고 있습니다만, 오늘 말씀의 연관성 안에서 보면 부족하고 미숙하나마 주님의 길에 들어선 우리 모두를 향하고 있다고 느껴집니다.
주님께서 부르셔서 그분의 사랑을 배운 사도들과 우리는 서로에게 겸손으로 다가가야 합니다. 그것이 주님께서 가르치신 바이며 또 그분께서 친히 행하신 바이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더하여, 비단 사람들 사이에서만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 앞에서도 그러해야 한다고 주님은 역설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거대한 우주의 질서나 자연의 조화 앞에서 경이로움을 느낍니다.
아무리 우리가, 하느님께서 특별히 당신 모상으로 만들고 숨을 불어넣어 주신 만물의 영장 인간이라도, 저마다 제 목적과 사명을 띠고 자기 자리에서 고유의 아름다움을 눈부시게 피워내는 피조물 앞에서 경이로움을 가지게 마련이지요.
근시안적인 자기 이익에 눈이 먼 인류의 생태계 파괴는 우리에게 피조물을 맡기신 주님의 당부를 간과하고 무시한 데서 온 것이 아닌가 반성합니다.
과연 우리 인류는 주님의 당부대로 모든 피조물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왔는지요! 만일 이 말씀을 경청하고 행동했다면 기후 변화나 생태계 파괴, 금일 겪는 바이러스 재앙은 아마도 없었을 것 같습니다.
"하느님의 강한 손 아래에서 자신을 낮추십시오"(1베드 5,6).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인간은 하느님의 뜻과 섭리 앞에 자신을 낮추기보다, 권력자와 자본가가 조장하는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분열 정책에 자신을 맡겨 왔습니다.
언젠가 자신도 그 정책에서 소외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하고, 자신도 그들처럼 재물과 힘을 소유하리라는 로망에 들떠 힘 없는 피조물을 착취하고 파괴하면서 말이지요.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기후 변화와 온갖 자연재해, 신종 돌연변이 바이러스들로 공격받고 있습니다.
훼손된 우주가 참다 참다 몸살하는 아픔의 여파를 고스란히 겪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그렇다면 모든 피조물과 관계를 회복하기에 우리가 너무 늦은 걸까요?
"모든 걱정을 그분께 내맡기십시오"(1베드 5,7).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도록 하십시오"(1베드 5,8).
오늘 우리가 듣는 베드로 사도의 권고는 아직 우리에게 길이 있다는 희망을 전제하면서, 그 희망을 위해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를 구체적으로 제시합니다.
근심과 공포, 좌절을 야기하는 모든 걱정을 만물의 주인이신 주님께 내맡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온 세상 만물이 함께 살아갈 방식을 깨어서 선택하고 실천하라고 하십니다.
"그 은총 안에 굳건히 서 있도록 하십시오"(1베드 5,12).
사랑하는 벗님! 우리는 은총에 은총을 받은 존재들입니다만, 어쩌면 그동안 발전이나 성과, 부의 축적을 은총과 혼동하며 살아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세상 모든 피조물과 형제자매라는 관계성을 자각하고 회복할 때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내리신 은총이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과, 자신과, 이웃과, 그리고 피조물, 이 네 바퀴의 축과 각각 평화로이 공존하며 화목할 때 하느님의 모상성과 은총을 충만히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오늘 마르코 복음사가의 축일을 맞아 우리의 형제인 "모든 피조물"이 말을 걸어온 듯합니다.
우리의 이기주의와 탐욕에 그들이 병들고, 그들의 몸부림에 우리가 무너지는 이때, 다시 한 번 주님의 당부를 기억하며 각자의 자리에서 작은 것 하나라도 실천하고 행동합시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이제라도 우리가 움직인다면...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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