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0년 4월 22일 부활 제2주간 수요일

dariaofs 2020. 4. 22. 05:48




오늘 미사의 말씀 안에는 빛과 어둠이 교차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보내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 3,16).

이 말씀은 성경에 담긴 구원 역사의 한 줄 요약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합니다. 하느님은 당신 아드님을 믿는 이들을 "멸망"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죽음"에서 "구원"으로 옮겨 주십니다. 즉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가게 해 주십니다.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요한 3,21).

진리는 곧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을 진리라고 말씀하셨지요(요한 14,6). 진리를 실천하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과 가르침을 따르며 실제 행동으로 옮김으로써 그분의 존재와 활동에 참여하는 것이지요.

예수님은 빛에서 나신 빛, 참 빛이십니다. 그분께는 어둠이 없습니다. 그분과 함께면 어둠은 더 이상 어둠이 아닙니다. 빛 안으로 걸어 들어가면 우리도 빛을 받아 빛에 흡수됩니다. 우리 안에 어둠은 더 이상 있을 곳이 없습니다.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요한 3,19).

슬프게도 세상은 빛보다 어둠에 익숙합니다. 그래서 어둠을 더 선호하지요. 말하자면 죄와 악, 미움과 증오, 차별과 소외, 이기심과 분열 쪽으로 더 쉽게 기울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원래 그렇게 창조되지 않았지만, 여간 정신차리고 깨어 있지 않으면 그렇게 되어 버립니다.

제1독서에서는 천사의 도움으로 감옥에서 풀려난 사도들이 등장합니다.

"밤"(사도 5,19)과 "감옥"(사도 5,18)은 어둠의 영역입니다. 또, 대사제와 동조자의 "시기심"(사도 5,17) 역시 어둠의 힘이지요. 반면 "주님의 천사"(사도 5,19), "이른 아침"(사도 5,21), "성전, 생명의 말씀"(사도 5,20)은 빛의 영역입니다.

"가거라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전하여라"(사도 5,20).

천사는 사도들을 풀어 주면서 멀리 도망가라거나 깊이 숨으라고 하지 않고, 오히려 성전 한가운데 서서 말씀을 전하라고 보냅니다. 사도들은 자기들을 잡아 가둔 적대자들의 눈에 띄기 쉬운 곳으로 다시 보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상황은 탈옥이나 탈출이 아니라 복귀라 할 수 있습니다. 사도들은 원래 있어야 할 제자리인 빛으로 되돌아가 말씀을 선포합니다.

결국 사도들은 다시 적대자들에게 소환되지요. 어둠이 빛을 삼키려 안간힘을 씁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다시피 어둠은 빛을 이기지 못합니다.


사도들은 아무리 큰 시련과 박해가 닥친다 해도 굴하지 않고 거듭거듭 빛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그들 안에 더 이상 어둠의 자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우리는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세상 한가운데서 살아갑니다. 우리의 실존 안에도 빛과 어둠이 공존하지요.


실존적 어둠을 안고 살아가면서도 사랑하는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분을 닮아보려 부족한 영혼을 일으켜 까치발을 드는 사이 어느새 우리에게 빛이 찾아올 것입니다.


백 번 어둠으로 고꾸라져도 백한 번째에 다시 일어나 빛을 향하면, 언젠가 빛이 어둠을 밀어내고 우리 존재 자체가 빛과 하나될 것입니다.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

이 말씀이 너무 추상적이고 거창하게 느껴진다면 아주 작고 소소한 일부터 구체적으로 하나씩만 해보아도 좋겠습니다.


세포에 속속들이 박힌 어둠을 떼어내는 일은 단번에 이루어지기 어려우니까요.


어둠에 무너지거나 자지러지지 않고 겸손하고 끈기 있게 빛을 향하는 사이 어느새 성큼 빛이 우리 안에 들어와 자리할 것입니다. 빛이 우리를 환하게 비추다 못해 우리와 하나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빛이 될 것입니다. 아멘.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