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시기가 진행되어 가면서 미사의 말씀은 조금씩 성령 강림을 준비합니다.
"그 사람이 밤에 예수님께 와서 말하였다"(요한 3,2).
예수님을 찾아온 니코데모가 바리사이에 최고의회 의원이었다니, 당시 이스라엘의 정치와 종교 분야에서 꽤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었을 겁니다.
예수님의 존재와 가르침, 행적에 대해서 호감과 신뢰가 있지만 주변의 눈치 때문에 당당히 예수님을 찾아오기가 어려웠겠지요.
"위로부터 태어남"(요한 3,3)
"물과 성령으로 태어남"(요한 3,5)
"영에서 태어남"(요한 3,8)
예수님께서 니코데모에게 새로운 탄생에 대해 이야기하시지만 그는 알아듣지 못합니다. 탄생을 육신의 어머니를 통한 출산에 국한해서 사고하기 때문이지요.
예수님께서 친히 보여 주실 부활은 죽음을 거쳐 새 생명으로 되살아남이지요. 우리가 살아가면서 체험할 수 있는 부활은 그동안 살아온 육적인 삶에서 벗어나 영 안에서 거듭 나는 것입니다. 육에 몰입되어 사는 삶 자체가 곧 죽음의 상태니까요.
오늘 니코데모가 보여준 두려움 섞인 조심스런 행보는 죽음과 새 생명의 경계에서 주저하는 기득권자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새 것을 얻기 위해서는 놓아야 하고 떠나야 하는데, 그로서는 지금껏 몸 담고 있는 영역이 죽음일 수 있음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으리라 짐작해 봅니다.
제1독서에서는 최고 의회에서 풀려난 베드로와 요한이 동료들과 함께 기도드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제 주님 저들의 위협을 보시고 주님의 종들이 주님의 말씀을 아주 담대히 전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사도 4,29).
그들은 위협과 공격을 없애달라고 청하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대히 말씀을 전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놀랍지요! 좀 심하게 말하면 겁쟁이에 비겁하기까지 했던 제자들이 오순절 성령의 힘으로 거듭난 덕분입니다.
"그들이 모여 있는 곳이 흔들리면서 모두 성령으로 가득 차 하느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하였다"(사도 4,31).
그들이 느낀 흔들림은 외적인 현상뿐 아니라 내적인 감동까지 포함한 진동이었으리라 여겨집니다. 성령께서 임하시니 모두가 뜨겁고 역동적이며 강렬한 힘에 사로잡혀 하느님 말씀을 전하지요. 아주 "담대히!" 말입니다.
담대함은 확신에 찬 자신감에서 나옵니다. 그 근저에는 믿음이 단단히 자리하지요. 인간적인 자기 힘과 능력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예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새 생명에 대해 무지를 넘어 모호하고 의뭉스러워 보이기까지 한 태도의 니코데모 역시 언젠가는 믿음에서 우러난 담대함을 증거할 때가 올 것입니다.
"이제는 죽음이 그분을 누르지 못하리라"(입당송).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더 이상 죽음의 영향을 받지 않으십니다. 죽음같은 두려움을 벗어버린 제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고요. 언젠가 니코데모도 그러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육신의 죽음과 부활을 포함해 지금 우리 각자의 삶에서, 죽음에서 새 생명으로 건너감이 무슨 의미일지 곰곰히 숙고하라고 오늘의 말씀이 초대하시는 듯합니다.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바람처럼 자유로이 자신을 내맡기고 살아가려면, 우리를 정박시킨 닻을 끊고, 그동안 안주했던 안전지대에 이별을 고하는 죽음 같은 결단도 필요하지요.
이렇게 부활은 삶의 곳곳에 매복되어 매 순간 피어날 수도, 사장될 수도 있는 선물입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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