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0년 4월 19일 부활 제2주일, 하느님의 자비 주일 - 오상선 신부

dariaofs 2020. 4. 19. 06:04



당신이 창조하신 모든 이를 구원하시려는 하느님의 자비를 기리는 날입니다. 오늘 미사의 말씀은 믿음을 통한 구원을 이야기합니다.

"이것들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여러분이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20,31).

요한 복음서 저자가 자신의 저술 목적을 밝힌 부분이 오늘 복음 대목의 말미에 나옵니다. 이는 단순히 요한 복음만이 아니라 성경의 모든 책이 지향하는 바일 겁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지으시고 사랑하시는 피조물 중 누구도 구원에서 제외되는 걸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 의지의 절정이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신 사랑으로 표현되었지요. 하느님은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이들을 영원한 생명으로 초대하십니다.

"나는 ... 직접 보고 ...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요한 20,25).

이 어깃장에 가까운 항변은 단 한 번의 부재로 부활하신 스승과의 해후를 놓친 토마스의 속상하고 안타까운 심정을 대변합니다. 사실 그도 사랑하는 주님을 얼마나 얼마나 뵙고 싶었겠습니까!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요한 20,29)

토마스를 향한 예수님의 말씀은 준엄한 꾸짖음이나 질책, 실망의 표현이 아니라 제자의 심정을 잘 아시기에 던지는 애정 어린 다독임으로 들립니다.


"네 맘 다 안다. 그래서 내가 다시 온 거 아니니! 이제 됐지?" 다른 제자들 모르게 슬쩍 윙크까지 날리셨을지도 모를 정도로 사랑이 듬뿍 느껴집니다.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요한 20,29).

오늘 토마스로 인해 촉발된 이 말씀은 사도들을 통해 전해내려온 신앙을 받아들인 우리 모두를 격려하는 말씀입니다.


그렇다고 "보고 믿는 이들" 즉 신앙의 일세대를 평가절하하시려는 의미도 아닙니다. 두 눈 시퍼렇게 뜬 채 모든 걸 목격하고도 믿지 않는 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당시 믿음을 선택한 이들이야말로 신앙의 영웅입니다.

제1독서에서는 "신자들"(사도 2,42) 즉 믿는 이들의 생활이 나옵니다.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친교를 이루며 빵을 떼어 나누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사도 2,42).

예수님을 그리스도라 고백하는 이들은 신앙과 삶이 유리된 관습적 율법주의에서 벗어나, 함께 지내고 공동으로 소유하며 빵을 떼어 나누고 하느님을 찬미하며 살아갑니다.


누구의 강요도 아닌, 오직 믿음에서 시작된 새로운 삶의 지평입니다. 실질적인 구원의 삶이 태동한 것이지요.

제2독서에서 사도 베드로는 믿음과 구원의 상관관계를 명확히 못박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본 일이 없지만 그분을 사랑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그분을 보지 못하면서도 그분을 믿기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쁨 속에서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의 목적인 영혼의 구원을 얻을 것이기 때문입니다"(1베드 1,8-9).

영혼의 구원이 곧 믿음의 목적입니다. 우리는 육의 눈으로 만나본 적 없는 분을 영으로 감지하고 믿음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믿는다는 증거는 바로 영혼의 기쁨과 즐거움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오늘 교회가 기억하고 기념하는 하느님의 자비는, 알면 알수록 믿지 않을 수 없고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드러납니다.


그분 품으로 달아들어 숨는 자체가 곧 자비의 품에 자신을 내어맡기는 믿음의 용기입니다. "예수님, 저는 당신께 의탁하나이다!"

부활 팔일 축제를 마감하며 용서와 화해의 은총이 가득한 오늘, 부족하고 죄스런 자신을 잊고 믿음으로 구원을 쟁취하는 축복의 날 되시길 기원합니다. "주님의 자애는 영원하십니다"(화답송 참조). 아멘.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