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미사의 말씀에서 생명의 빵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라삐 언제 이곳에 오셨습니까?"(요한 6,25)
군중이 예수님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됩니다.
배를 타고 빵의 기적이 있던 곳에 왔다가 거기에 주님이 계시지 않자 카파르나움까지 가서 드디어 예수님을 뵙지요. 매우 적극적이고 열성가득한 모습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뵙기 위해 시간과 수고, 노력을 아끼지 않습니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요한 6,26).
군중이 당신을 찾는 이유를 잘 아시는 예수님의 지적은 그들을 부끄럽게 하시려는 게 아니라 표징의 진정한 의미에로 그들의 눈을 뜨게 해 주시려는 것입니다.
사실 "빵"은 당장 물리적으로 배를 곯는 이들에게는 실질적 양식이 되겠지만, 좀 더 나은 삶을 바라는 이들에게는 재물이나 명예, 권력까지도 의미할 겁니다.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요한 6,27).
주님을 그토록 간절히 찾는 이유가 썩어 없어질 세속의 환영을 얻기 위함이라면 참 허무하지요. 인간에게 필요한 진정한 양식은 영원까지 이어지는 행복인데 말입니다.
제1독서에서는 적대자들 앞에 선 스테파노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의 말에서 드러나는 지혜와 성령에 대항할 수가 없었다"(사도 6,10).
스테파노는 은총과 능력이 충만한 사람입니다. 그가 사심이나 탐욕으로 세속의 양식을 좇는 이가 아니기 때문이지요. "그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처럼 보인"(사도 6,15) 것도 이를 증명합니다. 부와 명예의 바벨탑을 아슬아슬 쌓는 자의 얼굴에서는 찾기 힘든 빛입니다.
"권세가들 모여 앉아 저를 헐뜯어도 이 종은 당신 법령을 묵상하나이다"(화답송).
힘 있는 자들이 함부로 자신을 도마 위에 놓고 온갖 모함과 음모로 난도질하는 순간에도 평정을 유치하며 말씀에 머무를 수 있다면 엄청난 내공이 아닐 수 없겠지요.
평소 사람의 평판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꿋꿋이 진리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평정심일 겁니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영성체송).
세상의 양식과 영원한 생명의 양식이 다르듯, 세상이 주는 평화와 예수님이 주시는 평화는 다릅니다.
대개의 사람들이 세상 양식으로 만족스런 상태를 평화라 착각하지만, 어떤 환난과 고통 앞에서도 우리를 지혜와 성령으로 굳건히 하며 천사의 얼굴처럼 순수하게 만드는 힘은 영원한 양식에서 옵니다.
감사하게도 지금 우리에게 주어지는 영원한 생명의 양식은 말씀과 성체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이 말씀 묵상을 읽는 벗님은 영원한 생명의 양식을 찾는 분입니다.
아니라면 재미나고 감동적인 글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굳이 시간을 내어 여기까지 두드리셨을 리 없겠지요.
벗님은 누구를 찾아서 오셨습니까? 그리고 주님께서 무엇을 주시기를 원하시나요? 주님을 찾아 헤매다 만난 군중이 되어 이 질문에 깊이깊이 머무는 오늘 되시길 축원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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