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미사의 말씀 안에는 예수님께 올가미가 될 계시들이 매우 담대하게 선포됩니다.
"모세가 아니다 ... 내 아버지시다"(요한 6,32).
이스라엘은 긴 광야살이에서 조상들의 목숨을 부지하게 해 준 만나에 대해 기억합니다.
그런데 사십 년을 한결같이 만나로 백성을 먹이신 하느님의 충실한 사랑보다 모세의 능력과 권위에 기대는 경향이 짙었지요. 이는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에 집착하느라 율법 안에 깃든 하느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당시 이스라엘의 모습과도 일치합니다.
"내 아버지시다."
예수님께서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주신 기적을 베푸신 분, 즉 하느님이 당신의 아버지시라고 말씀하십니다.
유다인들이 궁금해하면서도 듣고 싶지 않았던 가장 민감한 부분이었을 겁니다. 예수님은 다른 설명 없이 본질로 성큼 들어가십니다. 그리고 이 진실이 곧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 것입니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요한 6,35).
예수님께서 당신을 빵이라 하십니다. 생명을 유지하고 몸과 마음을 흡족하게 해주는 빵은 사람에게 필수불가결한 양식을 가리킵니다. 유다인들은 당신을 먹으라고 내 주신 사랑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채 문자적 어휘에 발이 묶여, 이 역시 불편해 합니다.
제1독서에서는 스테파노의 죽음이 전해집니다.
"그들은 의로우신 분께서 오시리라고 예고한 이들을 죽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여러분은 그 의로우신 분을 배신하고 죽였습니다"(사도 7,52).
이스라엘 역사에서 참 예언자들은 그들이 전하는 말씀의 진리 때문에 박해와 죽임을 당해왔지요. 이제 예수님 시대의 유다인들은 그 진리이신 분을 죽입니다.
아예 진리의 숨을 끊어버리려는 악의 행태입니다. 이 폭력의 연속성을 짚는 스테파노가 유다인들의 눈에 고울 리 없겠지요.
"그들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았다"(사도 7,57).
그들이 보인 반응은 참으로 많은 상징을 담고 있습니다. "큰 소리"를 지름으로써 말씀을 끊어버리고 공명마저 막아버린 것이지요. 또 "귀를 막음"으로써 더 이상 듣지 않겠다는 심중을 매우 강하게 표출합니다.
말씀을 듣지 않고 말씀이신 분을 거부하는 의지적 행동인 셈이지요.
예수님은 온갖 위협과 음모 앞에서 당당히 진리를 밝히십니다. 스테파노도 주저없이 예수님의 길을 따르지요. 제 것을 섞지 않고 진리를 추구하기에 그렇습니다.
생명의 빵이신 주님으로 속이 꽉 차고 영혼이 충만하기에 이미 죽음 너머의 영원을 누리고 있는 까닭이지요.
사랑하는 벗님! 이 부활시기에 주님께서 우리를 다시 세우십니다. 담대하게 진리를 선포하고 외치라고 부르십니다.
기쁨으로, 사랑으로 흘러넘치는 영원한 생명, 부활은 가슴 속에 가둬둘 수 없는 진실입니다. 그러나 믿지않는 이들에겐 너무도 큰 불편한 진실이랍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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