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0년 4월 30일 부활 제3주간 목요일

dariaofs 2020. 4. 30. 05:36



오늘 미사의 말씀에서 예수님의 자기 계시는 절정을 향해 달려갑니다.

"나는 생명의 빵이다"(요한 6,48).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요한 6,51).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요한 6,51).

예수님의 말씀이 점층적으로 강도를 더해갑니다. 당신은, 조상들이 먹고도 죽어간 만나와 비길 수 없는 "생명의 빵"이시라는 말씀도 논란의 여지가 있는데,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하시니 군중을 당혹스럽게 만드십니다.

게다가 "살"은 인간 조건을 가리키는 참으로 실제적인 표현이 아닐 수 없지요. 너나 할 것 없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니고 살아가는 "살"은, '가능성과 나약성을 포함해 인간의 실체를 이루는 모든 것을 가리킨다'고 학자들은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당신 살을 빵으로, 양식으로 세상에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듣는 이들에게는 그동안 접해보지 못한 방식입니다.


혹자는 식인을 떠올릴만큼 무시무시한 표현으로 받아들이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미친 소리쯤으로 냉소하기도 합니다. 그만큼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이지요.

제1독서는 필리포스의 선교 대목입니다.

"그는 하느님께 경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돌아가면서 자기 수레에 앉아 이사야 예언서를 읽고 있었다"(사도 8,27-28).

천사의 안내로 필리포스가 만난 사람은 이방인인 에티오피아 사람 내시로 왕궁의 고관이었습니다. 예루살렘 경배나, 여행 중간에 성경을 봉독하는 것으로 보아 유다 신앙을 받아들여 독실하게 실천하는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의 생명이 이 세상에서 제거되어 버렸으니 누가 그의 후손을 이야기하랴?"(사도 8,33)

하느님께서 그의 실존을 건드리는 말씀을 통해 그에게 다가가십니다. "후손"은 말씀 속 '주님의 종'에게서도, 내시인 그에게서도 박탈된 하느님의 축복이지요. 대개 사람들은 자기에게 허용되지 않은 부분에 대해 미련을 갖게 마련입니다.


주님께서 내시의 마음속에 의문을 일으키시고 답을 일러 줄 필리포스를 보내신 것입니다.

"필리포스는 입을 열어 이 성경 말씀에서 시작하여 예수님에 관한 복음을 그에게 전하였다"(사도 8,35).

흔히 생명과 후손을 결부시켜 생각하면 자손을 위한 인간의 생식 기능을 떠올릴 겁니다. 이 차원에서는 주님의 종이 가리키는 예수님이나 에티오피아 내시에게 희망은 없습니다.

필리포스는 예수님의 지상에서의 육신적 "생명"은 끝났지만, 그분이 남긴 "살"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부여받는 "후손"들이 온 세상 모든 민족 안에서 이어져갈 것임을 설명했을 것 같습니다.


이 세상에서 일어난 전대미문의 부활 사건으로 이제 생명과 후손의 개념은 다른 차원으로 건너간 것이지요.

"내시는 그를 더 이상 보지 못하였지만 기뻐하며 제 갈 길을 갔다"(사도 8,39).

말씀에서 위로를 얻은 내시는 자청해 세례를 받고 기쁨에 넘칩니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 기쁨은, 생명과 후손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과 희망으로 배가됩니다.


이후 성경은 더 이상 그를 언급하지 않지만 분명히 그는 자신의 실존 안에서 누릴 영원한 생명에 대해 전율하며 행복하게 살았을 것 같습니다.

주님의 살은 영원한 생명을 약속합니다. 우리가 받아모시는 주님의 몸이 나에 대한 그분의 완전한 자기 증여이고, 살을 베어 먹일 만큼의 사랑의 결정체라는 사실에 전율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벗님! 코로나19 사태로 미사 참례가 제한되어 성체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사무쳐가는 이 시기에, 우리가 사랑하는 그 님의 살(몸)을 향한 이 허기와 갈망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들 느끼실 겁니다.


이 결핍이 우리의 실존을 주님께 더 가까이, 더 깊은 일치에로 이끄시니 감사합시다.


우리가 초대받은 생명은 일시적이지도 한시적이지도 않고, 선착순이나 인원 제한이 없는 "영원함"이니 인내로이 기다리며 사랑을 깊여 갑시다. 믿음을 굳히고 희망을 키우며 나아갑시다.

"잔인한 달",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통해 썪은 나무 뿌리에서 새싹이 돋음을 보았으니, "생명의 달" 오월은 성모님과 함께 이 생명의 충만함을 만끽하는 '제일 좋은 시절'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