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회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승천하신 날을 대축일로 경축합니다. 오늘 미사의 말씀은 주님 승천 사건과 그 이후 교회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
예수님께서 떠나시는 마당에 영원히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리스도교 안에서 만나는 무수한 신비의 역설 중 하나일까요? 우리가 죽음에서 생명을, 비움에서 풍요를, 가난에서 행복을 이야기하듯, 주님의 떠남에서 오히려 영원한 현존을 거머쥐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사실 다른 공관 복음서 저자들은 마태오 복음사가와 달리, 예수님께서 사명을 부여하신 후 승천하셨다는 한두 줄의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어쩌면 마태오는 예수님의 승천을 하늘로 올라가신 물리적 사건에서, 본래 신성의 자리로 돌아가심으로써 우리 시야에서는 사라지셔도 그로써 더욱 긴밀히 함께하신다는 영적 현존의 의미로 받아들인 것이 아닐까 합니다.
제1독서에서 사도행전 저자는 예수님 승천 사건을 구체적으로 소상히 기록했습니다.
"주님 지금이 주님께서 이스라엘에 다시 나라를 일으키실 때입니까?"(사도 1,6)
제자들은 이 극적인 만남의 순간에도 하느님 왕국의 도래가 확실히 "언제"인지 알고 싶어합니다. 제자됨의 의미를 아직 깨닫지 못한 이들의 조급함이랄까요. 그들은 죽으셨다가 살아나신 예수님을 "더러는 의심하였다"(마태 28,17)고도 하지요.
"그 때와 시기는 ... 너희가 알 바 아니다"(사도 1,7).
예수님께서 선을 그으십니다. 그건 아버지의 권한으로 정하신 일이고 당신도 모르신다고 이미 분명히 언급하셨지요(마태 24,36 참조).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이 승천 사건과 성령 강림 사건을 통해 이 세상에 주님 현존을 이어갈 부활의 증인이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왜 하늘을 쳐다보며 서 있느냐?"(사도 1,9)
이미 주님의 부재를 처절히 체험했던 제자들이 다시 주님을 잃어버립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첫 번째 상실과는 달리 영광과 위엄의 모습으로 떠나시지요. 게다가 현존의 약속을 단단히 새겨 주셨으니, 이제 그들은 빈 하늘을 하염없이 올려다볼 것이 아니라 자기 존재와 이 세상을 가득 채운 주님을 찾고 감지하고 느껴야 합니다.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우리가 성 삼위 하느님의 영광을 깨달을 수 있기를 기원하며, 교회를 통한 그리스도의 현존을 이야기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모든 면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그리스도로 충만해 있습니다"(에페 1,23).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그분은 만물 위에, 만물을 통하여, 만물 안에 계십니다"(에페 4,6). 주님을 머리로 하는 우리는 영원히 주님과 떨어질 수 없지요. 그분과 우리는 하나입니다.
제 영광과 영달을 위해 예수님을 곁에 붙잡아 두는 것이 능사가 아니고, 또 그렇게 할 수도 없다는 걸 제자들은 알아가는 중입니다.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 함께함이고 내어줌이라 하지요.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성공이나 부귀영화의 보장보다 더 값집니다. 변치 않을 사랑의 보증이니까요.
사랑하는 벗님! 오실 분, 성령을 기다리며,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심을 기뻐하고 감사하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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