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0년 5월 21일 부활 제6주간 목요일

dariaofs 2020. 5. 21. 00:48

 

 

오늘 미사의 말씀은 하느님의 섭리를 드러냅니다.

"조금 있으면 ... 그러나 다시 조금 더 있으면"(요한 16,16.17.18.19)

오늘 복음 내용에서는 이 말씀이 무려 네 차례나 반복됩니다. 마지막 절을 빼고는 모든 절에 전부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조금"이라든가 "조금 더"라는 말은 정확한 산술적 시간을 가리킨다고 보기는 어렵지요. 그래서 제자들은 몹시 당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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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신다는 스승의 말씀도 감당하기 어려운데, 그게 정확히 언제이고, 어떤 사건과 함께 이루어지는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으니까요.

"그것이 무슨 뜻일까? 무슨 이야기를 하시는지 알 수가 없군"(요한 16,18).

통상 인간은 "언제인지" 알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때"를 콕 짚어 주시길 바랍니다. 기도하면서도 자신이 원하는 "때", 자기가 필요하다고 여기는 "때"에 그분께서 즉각 해결해 주시길 기대하고, 심지어 보채기까지 하지요.

하지만 주님의 "때"는 몇 날 몇 시라기보다, 우리에게 적당하다고 그분께서 여기시는 "때"입니다. 말하자면 하느님 섭리의 때인 거죠. 인간 편에서 볼 때는 미지의 불확실성이지만, 이러한 무지를 견디는 힘이 곧 신앙의 양분이 됩니다.

제1독서는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선교 대목입니다.

"거기에서 그는 ... 아퀼라라는 어떤 유다인을 만났다 ... 마침 생업이 같아 그들과 함께 지내며"(사도 18,1.3)

코린토에서 바오로는 진실한 동료들을 만나게 됩니다. 열렬하고 충실한 신앙을 지닌 아퀼라와 프리스킬라 부부지요. 이들은 스스로도 훌륭한 신자이면서 초대교회 안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아폴로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사도 18,24-28 참조).

 

그런데 그들이 "마침" 얼마 전에 로마를 떠나 "하필" 코린토에 왔다고 하네요. 게다가 "마침" 바오로와 그들이 생업까지 같다고 합니다. 이 모든 일이 과연 우연이기만 할까요?

"그 자리를 떠나 티티우스 유스투스라는 사람의 집으로 갔는데 ... 그 집은 바로 회당 옆에 있었다"(사도 18,7).

코린토에서 바오로는 유다인들과 그리스인들을 설득하려 애썼지만 그들의 거부를 직면하지요. 그래서 옮긴 거처가 "바로" 회당 옆집이었고, 결국 "회당장 크리스포스는 온 집안과 함께 주님을 믿게 되었"(사도 18,8)습니다.

이방인 선교의 직무를 수행하는 바오로는 이렇듯 미지의 불확실성 안에서 하느님의 섭리 안을 종횡무진 누빕니다. 성실하신 하느님께서는 바오로에게서 눈조차 떼지 않으시고 알맞은 때에, 꼭 필요한 사람과 만남을 안배해 주시지요.

"우연"이란, 당신을 드러내시지 않고 보이지 않게 섭리하시는 하느님의 겸손이라고 하지요. 인간 편에서는 "기가 막힌 우연"인 것이 실은 하느님 섭리 안에 나 있는 길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요한 16,20).

어리둥절한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희망의 빛을 한 줄기 던지십니다. 물론 "바뀔 것"이라는 미래형 동사에는 여전히 정확한 시간이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요.

제자들이 통곡과 애통과 근심의 터널을 구비구비 지나겠지만, 언젠가는 결국 기쁨에 가 닿을 수 있다는 스승의 보증이니, 인내하고 기다리며 견뎌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됩니다.

우리는 하느님 섭리 안에서 살아간다는 걸 불완전하게나마 알고 있긴 하지만, 온전히 믿고 인내하고 기다리며 견디는 것과 별개의 문제일 때가 종종 있지요. 때론 언제일지, 어떻게일지, 누구일지 등등 산술적으로 정확한 데이터를 손바닥 보듯 학인하고 싶어 조급해집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제시하시는 "조금"이나 "조금 더"의 답안지는 적어도 우리가 이 지상 순례를 마치는 날까지 우리 손에 들어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건 맞닥뜨리며 풀어가고, 풀어가면서 알아듣거나 나중에야 무릎을 치며 깨닫게 되는 문제지니까요. 그분이 우리의 무지를 조롱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게 우리에게 유익하고 복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얼키고 설킨 세상사 안에서 불확실성을 벗삼아 꿋꿋이 걸어갑시다.

 

주님은 "우리를 앞장서 가시고 우리 가운데 사시며 길을 열어 주는 분"(입당송 참조)이시니, 그분의 섭리 안에서 신뢰와 의탁의 끈을 부여잡고 나아갑시다. 모든 슬픔과 고통은 지나가고 모든 것은 기쁨으로 바뀔 것입니다. 아멘.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