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미사의 말씀은 우리에게 '신념'에 대해 묵상하도록 초대합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회당에서 내쫓을 것이다. 게다가 너희를 죽이는 자마다 하느님께 봉사한다고 생각할 때가 온다"(요한 16,2).
예수님께서 뒤에 남겨질 제자들이 앞으로 겪게 될 일에 대해 직설적으로 숨김없이 말씀하십니다. 회당에서 쫓겨나는 것은 공동체로부터 파문되는 고립을 의미합니다. 종교 중심의 사회에서는 사형선고와 다를 바 없는 통첩이지요.
게다가 죽임까지 당한다고 하시네요. 파문으로 영혼이 죽은 이에게서 육적 생명마저 앗아간다니 기가 막힙니다.
스승의 수난과 죽음 예고에 펄쩍 뛰며 만류하고, 질문조차 못할 만큼 두려워하던 그들이, 이제는 스승의 운명을 자신들의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을 직면한 겁니다.
"하느님께 봉사한다고 생각할 때가 온다."
그런데 앞으로 당하게 될 박해와 죽음이 하느님께 대한 봉사의 미명으로 이루어진다고 하니 갈수록 태산입니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이 그 하느님의 이름으로 쫓겨나고 죽어야 한다면, 유다인들이 믿는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의 하느님이 다른 걸까요?
제1독서는 바오로 일행이 마케도니아 지역의 첫째가는 도시인 필리피에서 복음을 전한 이야기입니다.
"이미 하느님을 섬기는 이였던 리디아라는 여자도 듣고 있었는데 바오로가 하는 말에 귀 기울이도록 하느님께서 그의 마음을 열어 주셨다"(사도 16,14).
리디아는 여느 이방인과는 달리 이미 하느님을 믿고 섬기는 이였지요. 결국 그녀는 온 가족과 함께 세례를 받아 새로운 길에 들어섭니다.
하느님을 섬기는 것으로 보면 유다인들이나 리디아나 크게 다를 바 없는데, 한 쪽은 하느님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한 쪽은 하느님과 함께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것입니다. 이 두 부류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귀 기울이도록 하느님께서 그의 마음을 열어 주셨다."
리디아는 하느님께서 바오로가 전하는 복음에 대해 마음을 열어 주신 덕분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녀는 하느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자신도 모르게 단순히 순종하고 따랐을 뿐이지요. 그녀는 자신 안에서 일어나는 의식의 흐름과 변화, 마음의 움직임 모두를 하느님께 맡겨드리는 이였습니다.
반면 유다인들은 들으려 하지 않고 보려 하지 않았지요. 하늘에서 온 이가 아니면 행할 수 없는 무수한 표징과 가르침에 눈과 귀를 닫은 채, 예수님에게서 율법과 배치되는 흠을 찾아내는데 혈안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이미 단단히 구축된 신념, 즉 선민사상과 율법주의가 하느님 자리를 대신 꿰차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아버지도 나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한 짓을 할 것이다"(요한 16,3).
유다인들은 스스로 하느님을 안다고 착각하지만 실은 아버지를 모르기에 그런 짓을 저지르는 것입니다.
율법과 관습을 수호한다면서 오히려 민족적 정체성인 하느님 자녀됨을 거부하는 모습이지요. 그러면서도 스스로는 잘 하는 줄 알고 있으니 그들에 대한 예수님의 안타까움이 얼마나 크시겠습니까!
신념 자체는 귀한 것입니다만, 민족과 율법에 대한 유다인들의 신념이 사람을 구분하고 배척하기보다 포용하고 섬기는 데 작용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큽니다.
어느덧 5.18 민주화 운동이 40주기를 맞았습니다. 40이라는 상징적 숫자만큼 그간 항쟁의 의미와 해석에 대해 많은 공방과 부침이 있었지요. 신념이 권력 유지와 자리 보전을 위해 맹목적으로 작동할 때 폭력이 될 수 있음을 우리는 봅니다.
리디아처럼 자신 안에서 고요히 움직이시는 하느님의 영을 따라 눈과 귀를 열 때 진리와 정의는 제 본 모습을 드러냅니다. 우리의 신념이 하느님의 모상인 인간의 존엄성과 공동선을 향할 때 진정 하느님께 봉사할 수 있습니다.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귀한 생명을 바친 모든 영혼들, 아직도 슬픔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유가족들, 그리고 가해자건 피해자건 극심한 트라우마에 갇혀 고통 속에 살아가는 모든 이들을 주님께 봉헌하며 기도드리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40년간의 험난한 광야 여정을 끝내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우리 모두도 이제 5.18의 교훈을 민주화의 원체험으로 삼으며 새로운 대한민국의 길을 함께 열어 가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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