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0년 5월 15일 부활 제5주간 금요일

dariaofs 2020. 5. 15. 06:04



오늘 미사의 말씀에서 주님은 당신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바를 아주 간결하게 직설적으로 전달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5 17).

이 말씀 안에는 단순하지만 매우 단호한 예수님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사랑을 명령하실 때 그분은 주저하거나 머뭇거리는 일이 없으십니다. 곧 예수님께서 그 사랑의 모범을 보여 주실 터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5,12).

예수님이 요구하시는 계명은 이것 뿐입니다. 그런데 구약에서는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라"(레위 19,18)고 하였었지요.


이웃을 사랑하되, "너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계명이 예수님에게서는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으로 변합니다. 이제 이웃사랑의 기준은 더 이상 내가 아니고 그분입니다.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3).

생명은 누구에게나 가장 소중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생명을 바쳐 타인을 구한 이야기들은 듣는 이를 숙연하게 만들지요. 자기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타인에게 선물하는 마음에는 그가 어느 종교를 가지고 어떤 이념으로 살아가건 사랑이 실재합니다.

제1독서는 예루살렘에서 열린 사도회의의 결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은 사람들입니다"(사도 15,26).

먼저 사도들과 원로들은 안티오키아에 복음의 씨를 뿌린 바오로와 바르나바를 보증합니다.


예수님 이름을 위해 목숨을 내놓은 사람들이라는 이 보증은 그들이 "친구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가장 큰 사랑"의 장본인임을 밝히는 것입니다. 곧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예수 그리스도의 친구이고 서로를 위해 목숨을 내놓는 사이라는 뜻이지요.

"여러분이 이것들만 삼가면 올바로 사는 것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사도 15,29).

참으로 간명하면서도 사려 깊은 결정이 안티오키아 신생 교회에 전달됩니다. 몇 가지 본질적인 부분에 대한 틀을 잡아 주고는 그 안에서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하도록 허용하고 있지요.


흔히 초보자에 대해 가질 수 있는 노파심으로 중언부언 하지 않고 군더더기도 없습니다.

사도들과 원로들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모세의 율법이나 할례 등의 유다교 관습을 강요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이를 있는 그대로 전합니다.


유다교의 뿌리를 둔 자신들에게도 버거웠던 짐을 새 구성원들에게 굳이 지울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겁니다. 그들의 기초는 모세의 율법을 넘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고 성령이시기 때문입니다.

진리는 아주 단순합니다. 진리를 전하면서 조건과 부연 설명을 덧입혀 자꾸만 규정을 더 크고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면 오히려 하느님의 목소리인지 되짚어 보야야 합니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모두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요한 15,15).

사랑하는 벗님! 예수님은 벗님을 위해 목숨을 내놓으셨답니다. 그래서 벗님을 친구라 여기며 직접 벗님을 뽑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말씀을 통해 매일 아버지에 대해 알려주십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사랑하라, 그리고 네가 원하는 바를 하라."는 유명한 권고를 남기셨지요.


오늘 내가 남을 위해 목숨은 못 내어 놓을지라도 예수님이 나를 친구라 부르며 해주시는 그 사랑을 생각하며 그렇게 서로서로 사랑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그로써 우리도 서로 친구가 되어 초대교회 공동체처럼 서로의 짐을 덜어 주고, 생명을 북돋우며, 기쁨을 나누게 될 것이니까요.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