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미사의 말씀은 주님과 우리가 한 몸이라고 하십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요한 15,5).
가지는 나무의 일부입니다. 나무는 땅에서 끌어올린 양분을 가지 끝까지 전달해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고 잎도 무성히 돋게 합니다.
그러면서 나무는 전체적으로 더 풍성해지지요. 가지는 홀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홀로 떨어져 있다면 부러지거나 잘려나가 곧 폐기될 죽은 가지일 뿐이지요.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요한 15,5).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서 가지인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당신을 떠나면 너희는 무능해지고 무기력해져 결국 망할 거라는 저주나 으름장으로 들으면 곤란합니다. 그건 사이비 종교에서나 하는 이야기지요.
오히려 예수님의 이 말씀은 "너희와 내가 함께라면 무엇이나 할 수 있다"는 뜻으로 들립니다.
엄청난 긍정의 기대와 격려가 담겨 있지요. 조금 다른 각도로 한 걸음 더 들어가면, "나와 함께 하지 않은 일은 아무리 세속적으로 성공한 듯 보여도 실상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속말 또한 느껴집니다.
제1독서에서는 초대 교회에서 주님의 가르침이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이 나옵니다.
"바오로와 바르나바 두 사람과 그들 사이에 적지 않은 분쟁과 논란이 일어나 ...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원로들에게 올라가기로 하였다"(사도 15,2).
유다교와의 연속성 안에서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인 이들, 즉 할례받은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이 모세의 관습과 할례를 이방인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까지 강요하자 선교지는 물론 예루살렘에서도 의견차가 발생합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예루살렘에서 함께 이 문제를 검토하고자 합니다.
이 기사는 교회 초창기부터 공동체가 한 몸인 양 움직였음을 보여줍니다. 이제 막 싹이 난 가지 끝에서 일어난 일도 몸통 전체가 나서서 하느님의 뜻에 의거해 길을 찾으려는 모습입니다.
이 움직임은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과 가지인 우리 사이의 일체감과 다르지 않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우리는 그 지체이니까요.
"그들은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 하느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해 주신 모든 일을 보고하였다"(사도 15,4).
그들이 보고한 내용은 하느님께서 함께 하시면서 이뤄 주신 모든 일에 대한 것입니다.
자기들이 거둔 성과나 이득, 영광이 아니었지요. 주님께서 파견하신 모든 그리스도인은 주님과 함께이기에 무엇이나 할 수 있고, 또 그렇게 이룬 일은 의미를 가집니다.
파견된 이는 자기 일이 아니라 주님의 일을 하기에 그렇습니다. 무엇을 하든 그는 혼자 하지 않고 주님과 함께 하기에 무엇이나 할 수 있습니다.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요한 15,4).
이 상호적 머무름은 일치를 가리킵니다. 내가 네 안에 있고, 네 안에 있는 내 안에 또 네가 있고, 그런 네 안에 또 내가 있고... 이 신비로운 머무름은 무한대로 반복되고 무한대로 깊어집니다.
끝을 알 수 없이 서로 안에 자리하는 자신을 발견하는 사이, 어느 지점인지 알 수 없으나 이미 하나입니다.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한 말로 이미 깨끗하게 되었다"(요한 15,3).
감사하게도, 우리에게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이 우리를 정화하고 성화합니다.
하루 하루 내게 새로이 다가오신 "말씀"에 머물러 오늘을 걷고 한 해를 걷는 동안, 부족하고 죄인인 우리는 어느새인지도 모르게 깨끗해지고 순화되고 거룩해집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효과가 아닐지라도 그렇게 되어 갑니다. 우리가 머무르는 말씀, 품는 말씀이 되려 우리에게 머무르시고 우리를 품으시기 때문입니다. 머무름의 신비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오늘도 주님 안에 머무르는 귀한 날 되시길 기도합니다. 주님과 함께라면 우리는 무엇이나 할 수 있습니다. 아멘.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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