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미사의 말씀에서는 제자들에 대한 스승의 자상한 위로가 드러납니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요한 14,27).
어린 아이들은 엄마가 안 보이면 분리불안을 느끼지요. 예수님도 당신이 떠나신 뒤 제자들이 갖게 될 두려움을 잘 아시기에 자상히 준비를 시키십니다.
아직 스승 없이 흘로서기 할 준비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제자들에게 스승이 주시는 선물은 "평화"입니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요한 14,27).
머지않아 당신 목숨까지 아까워하지 않고 내어주실 예수님께서 지금 제자들에게 당신의 평화를 선뜻 내어주십니다.
예수님의 평화는 불편할 일 없고 위협이나 대립도 없는 안락하고 안온한 상태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건 세상이 제시하는 아슬아슬 깨지기 쉬운 일시적 무탈 상태 정도에 불과할 겁니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요한 14.27).
예수님의 평화는 마음이 산란해지고 겁도 더럭 날 만한 상황에서도 동요하지 않고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는 상태일 겁니다.
세상이 아무 문제 없이 잠잠한 상태를 평화라 여긴다면,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폭풍우 속에서도 그것이 별 문제가 되지 않아 잠잠할 수 있는 힘입니다. 이 평화는 감정이나 신경의 작용이 아니라 믿음과 의탁, 긍정의 산물이 되겠지요.
제1독서에서는 바오로와 바르나바의 선교 여행이 속도감 있게 펼쳐집니다.
리스트라에서 돌 맞고 버려졌다가 살아나서 데르베로, 다시 리스트라와 이코니온, 그리고 안티오키아... 이어서 피시디아, 팜필리아, 페르게, 아탈리아, 다시 안티오키아! 길지 않은 독서 내용 안에 드러난 두 사도의 동선이 숨막히게 분주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합니다"(사도 14,22).
그 과정에서 그들이 겪은 죽음의 위협과 배척, 버려짐의 평지풍파가 이 고백을 끌어냈을 겁니다. 제자들에게 한 이 말은 사실 "제자들의 마음에 힘을 북돋아 주고 계속 믿음에 충실하라고 격려하면서"(사도 14,22) 나온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십자가 없이 구원이 없고 죽음 없이 부활이 없다는 진리를 이제 막 신앙의 길에 들어선 제자들에게 안쓰러움과 기대를 담아 나누어 줍니다.
"하느님께서 자기들에게 해 주신 모든 일과 또 다른 민족들에게 믿음의 문을 열어 주신 것을 보고하였다"(사도 14,27).
이방인의 구원을 위해 파견된 자리, 안티오키아로 무사히 되돌아온 두 사도는 자신들이 겪은 일을 신자들에게 증언합니다.
때론 열정에 차서, 어느 대목에서는 담담히 그간의 여정을 나누었겠지요.
우리도 알다시피 꽃길만 있지 않았고 그다지 평안하거나 무탈하지만은 않았지만, 모든 것을 견디어내고 우뚝 선 이 자리에서는 누구도 깨뜨릴 수 없는 평화가 흘러나옵니다. 이 평화가 바로 주님의 평화일 것입니다!
"그는 나에게 아무 권한이 없다"(요한 14,30).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에 심어 주신 평화에 쐐기 하나를 단단히 박아 주십니다. 흔히 평화를 파괴하고 훼손하는 힘이라 여겨 두려워하는 온갖 악의 세력에게, "넌 나에게 아무 권한이 없다!"고 선포하시는 겁니다.
사랑하는 벗님! 오늘 우리를 둘러싼 채 우리를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려고 들쑤시며 찔러대는 죄악과 어둠, 욕정과 상처의 올가미를 향해 넌 나에게 아무 권한이 없다고, 주님에게서 받은 내 평화는 너쯤으로 깨지지 않는다고 단호히 외칩시다.
모든 것을 견디어낸 평화는 쉽사리 무너지거나 변질되지 않습니다. 그 평화의 원천이 우리와 함께 수난 받고 십자가에 못박히고 죽었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에게서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 삶의 자리가 행여 악다구니 넘치는 거친 장터나 광야일지라도 모든 것을 견디어 낸 주님의 평화로 충만하고 그윽한 하루 되시길 기도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평화가 벗님과 함께.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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