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미사의 말씀은 세상의 원리와 성령의 원리를 숙고하도록 초대합니다.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이다"(요한 15,19).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으면 우선은 서럽고 억울하고 속상하지만, 그 이유라도 속시원히 알면 좀 나을 것 같지요. 예수님은 당신이 떠나신 뒤 남겨질 제자들에게 미리 그 이유를 밝히십니다.
그 이유는 첫째, 제자들이 육으로는 세상 안에서 살아가지만, 육의 질서가 아닌 영의 질서를 살아가기에 그렇습니다.
세상이 뽐내는 재물과 명예와 안락을 탐하지 않고 오히려 가난과 희생, 비움을 추구하니 세상 입장에서는 불편한 존재가 되어 버립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고통과는 연대할지언정 세상의 유혹에는 야합하지 않으니까요.
둘째, 예수님께서 그들을 세상에서 뽑아 따로 세우셨기에, 예수님을 적대하던 이들의 악심이 그 제자들을 피해가지 않을 겁니다. 주님과 제자들은 이미 공동운명체이기 때문이지요.
"내 이름 때문에"(요한 15,21).
누구는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선을 행하고 사랑을 나누며 구원 상태를 누리지만, 누구는 그 이름 때문에 악을 휘두르며 스스로 구원을 거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감추어진 속마음을 환히 드러내는 위력을 지녔습니다(루카 2,35 참조).
제1독서에서는 바오로의 선교 여행이 계속됩니다. 눈치 채셨겠지만 어제까지의 대목과는 달리 바오로의 이름만 언급되네요. 바로 전 대목에서 바오로가 마르코의 일로 바르나바와 갈라졌기 때문입니다(사도 15,37-39).
"성령께서 ... 막으셨으므로"(사도 16,6).
"예수님의 영께서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리하여"(사도 16,7).
바오로 일행은 철저히 성령께 의지해 길을 갑니다. 어느 곳으로 가서 복음을 전할지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 성령이십니다.
물론 막으시는 이유를 당장은 알 수 없지만, "막으셨으므로"의 어미나 "그리하여"라는 접속어가 보여주듯, 그들은 "그래도" 순종하지요.
"바오로가 그 환시를 보고 난 뒤, 우리는 곧 마케도니아로 떠날 방도를 찾았다 ... 하느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이라고 확신하였기 때문이다"(사도 16,10).
그렇다면 이번의 이 확신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이 역시 성령께 활짝 열린 마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깨어 있다면, 그리고 사심과 탐욕에 빠져 있지 않다면, 막으시는 분도 주님이시고 열어 주시는 분도 주님이심을 어렵잖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당장 한치 앞도 모르는 우리에게 성령의 뜻은 나침반 이상의 안내자입니다.
이로써 그리스도의 제자이며 친구인 우리들이 살아가는 기준이 명확해집니다. 우리는 세상 안에 살되 세상 원리가 아닌 영의 원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으스대고 무시하고 억압하고 짓밟기보다, 사랑하고 나누고 희생하고 비우고 자신을 낮춥니다. 겉을 치장하기보다 마음을 닦고 영혼을 거룩하게 하는데 열성을 다하지요.
사랑하는 벗님! 때론 세상이 그런 우리를 반기지 않더라도 괜찮습니다. 얼핏 악이 만연하고 허영과 권모술수가 득세하는 듯 보이는 세상이지만, 그게 다는 아닙니다.
하느님 모상인 우리, 저마다 선하고 진실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씨앗을 품고 사는 우리가,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 더 많고 더 강력하고 더 끈기 있습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고 악은 선을 넘어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주님 앞에 머물러, 나를 움직이는 원리는 무엇인지, 무엇에 더 가까운지 살피는 시간 가져보시면 좋겠습니다. 성령의 사람인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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