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0년 5월 25일 부활 제7주간 월요일

dariaofs 2020. 5. 25. 05:55


오늘 복음 말씀에는 세 번의 "그러나"를 통해 세 차례의 반전이 있습니다.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그러나"(요한 16,31).

첫 번째 "그러나"는 제자들이 예수님께 이제 알아듣겠다고, 이제는 믿는다고 고백하자마자 예수님의 입에서 나옵니다. 너희가 믿는다고는 하지만 오히려 두려움으로 날 버리고 도주하리라고 예언입니다. 이는 제자들을 탓하거나 부끄럽게 만드시려는 것이 아닙니다. 굳이 이 말씀을 하신 이유는 뒤에 나옵니다.

"그러나 나는 혼자가 아니다.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다"(요한 16,32).

자기들이 스승을 버리고 흩어지리라는 말씀에 흠칫 놀랐을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두 번째 "그러나"로 위로하십니다. 너희가 혹 날 버리더라도 난 혼자가 아니니 너무 미안해 말고, 자책하지도 말고, 스스로에게 너무 실망하지 말라는 뜻으로 들립니다.

이미 주님께서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떼가 흩어지리라"(마태 26,31; 즈카 13,7 참조)는 성경 말씀을 인용하신 바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너희에게 이루어진 것이니 너무 괴로워하지 말라는 당부 같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16,33).

그러니 의기충전한 제자들에게 굳이 "그러나" 하셨던 이유는 결국 "그래도 나는 괜찮다"는 속내를 보여 주시려는 것입니다. 당신이 제자들에게 주신 평화, 세상의 그것과 다른 평화가 자기 혐오나 죄책감으로 깨지지 않길 바라시는 겁니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3).

세 번째 "그러나"로 제자들에게 무한한 격려가 이어집니다. 고난과 박해와 죽음이 없다는 게 아니라,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결국 당신이 승리와 생명을 쟁취하시리라는 확언입니다. 그러니 제자의 길은 어쩌면 결과를 알고 시작하는 전투와 같을 수도 있습니다.

제1독서는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 선교 내용을 담았습니다.

"바오로가 그들에게 안수하자 성령께서 그들에게 내리시어 그들이 신령한 언어로 말하고 예언을 하였다. 그들은 모두 열두 사람쯤 되었다"(사도 19,6-7).

바오로는 요한의 세례를 받은 에페소의 제자들에게 성령이 내리시도록 돕습니다. 마치 오순절 현장에서처럼 그들에게도 성령이 오셔서 신령한 언어와 예언의 은사를 받게 되지요. 그 수가 완전한 수, 열둘쯤 되었다는 것은 온세상 모든 이를 자녀로 삼으시려는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리라는 전망을 담고 있어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바오로는 석 달 동안 회당을 드나들며 하느님 나라에 관하여 토론하고 설득하면서 담대히 설교하였다"(사도 19,8).

우리는 지금 바오로 사도의 활약을 보고 있지만, 다른 곳에서 같은 뜻과 지향으로 목숨을 걸고 선교하는 다른 사도들의 모습 또한 그를 통해 관상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몇몇 제자들 말고도 교회 전승과 역사가 기억하는 제자들, 또 세상 기록에서 이름을 거두어들인 무명의 숨은 제자들까지, 그들 모두가 "세상을 이기셨다!"는 예수님 말씀을 증언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약함을 다 아시지만 "그러나" 믿어 주셨고 기다리셨습니다. 그들이 자기 힘이 아니라 성령의 힘으로 당신을 따르길 바라셨으니까요. 과연 제자들은 그렇게 됩니다.

사랑하는 벗님, 우리 역시 제자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 부족함을 다 아시는 주님께서 부르시고 세우시고 격려하십니다. 약함을 부여잡고 있으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 약함에 성령께서 오시면 무언가를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처럼 우리 삶에도 무수한 "그러나"의 반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자신의 약함, 타인의 부족함, 세상의 불합리 앞에서 속으로 고요히 "그러나"를 되뇌이며 주님의 생각과 결을 같이 하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단죄와 책망보다 신뢰와 위로, 격려가 행복한 반전을 선물할 것이라 믿습니다. 아멘.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