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미사의 말씀에서 두 개의 고별사를 만납니다. 둘 다 아름답고 진실한 사랑이 깊게 흐르는 기도입니다.
복음 속 예수님의 기도는 아버지께, 제1독서 바오로의 고별사는 에페소 원로들을 향하지만 그 내용 안에 겹치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아버지, 때가 왔습니다"(요한 17,1).
오늘 복음 대목은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에 바치신 대사제의 기도 중 당신 자신을 위한 기도와 제자들을 위한 기도의 일부입니다.
영광의 "때"가 닥쳐옵니다. 그 "때"는 사람으로서도 하느님의 아들로서도 직면하기 어려운 시간입니다. 아들은 인류의 속죄를 위해 수난과 죽음에 순종함으로써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할 것이고, 아버지는 그 아들의 제사를 받아들이시면서 그를 다시 살리심으로써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실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를 향한 완전한 신뢰와 사랑으로 서로를 영광스럽게 하십니다.
"이제 나는 성령께 사로잡혀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습니다"(사도 20,22).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종교와 정치의 중심지이지만 또한 예언자들이 피를 흘리고 죽어간 도시지요. 예루살렘을 향하는 바오로에게 무슨 일이 닥칠지 당시로서는 그도 원로들도 모르지만 그의 고백에는 비장함과 더불어 홀가분함이 서려 있습니다. "달릴 길을 다 달려"(사도 20,24) 사명을 완수한 그를 통해 주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오로는 자유롭습니다.
"모든 이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도록 ... 권한을 주셨습니다"(요한 17,2).
예수님의 이 말씀은 우리에게 진정한 권한이란 무엇인지 들려 줍니다. 세상은 자기에게 주어진 권한을 제 명예와 재물, 영달을 위해 휘두르고 그 과정에서 억압과 착취, 폭력도 불사합니다. 하지만 예수님 말씀처럼 권한은 생명을 주라고 주어지는 것이지요. 하느님께서 허락하시는 모든 권한은 타인을 생기있게 활짝 피어나도록 돕는데 기여해야 합니다.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말씀을 제가 이들에게 주고"(요한 17,8)
말씀이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아들에게서 제자들에게로 주어집니다. 아낌없이! 남김없이!
"유익한 것이면 무엇 하나 빼놓지 않고 ... 알려 주고 가르쳤습니다"(사도 20,20).
사도 바오로 역시 혼신의 힘을 다해 자신이 받은 모든 것을 신자들에게 쏟아주었지요. 이는 다른 모든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렇듯 하느님을 아는 지식과 말씀은, 원천이신 하느님에게서 나와 성자를 통해 그리고 교회를 통해 우리에게까지 주어집니다. 이 앎에서 믿음이, 믿음에서 사랑이, 사랑에서 일치가 피어나지요.
"저의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고 아버지의 것은 제 것입니다"(요한 17,10).
일치를 이룬 이들은 존재와 더불어 소유를 공유합니다. 앎도 믿음도 사랑도 일치도 영광도 생명도 죽음까지도 아버지의 것인 동시에 아들의 것이고, 과분하게도 그 일치에 참여하는 우리의 것이기도 합니다.
아버지께 드리는 예수님의 기도 안에는 더할 나위 없는 친밀함이 드러납니다. 아버지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과 순종, 신뢰가 하나로 녹아 있는 기도이기에 그렇습니다. 동시에 제자들에 대한 염려와 기원 또한 가득하지요. 이는 바오로의 고별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대의 영광을 위해 자신을 잊는 사랑은 이렇듯 아름답고 자유롭습니다. 사심 없이 "달릴 길을 다 달려"(사도 20,24) "맡기신 일을 완수"(요한 17,4)한 이는 제 영광의 무게를 훌훌 내던진 이의 자유로, 오히려 더 가벼운 마음으로 "때"를 맞이할 수 있지요.
사랑하는 벗님! 우리도 당신의 "때"를 향해 담담하게 자유로이 나아가시는 예수님 뒤를 따릅시다. 더 겸허히, 더 홀가분하게, 더 진실하게... 그것이 바로 우리가 "아버지 앞에서 누리던 영광"(요한 17,4), 본래의 영광입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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