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0년 5월 29일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dariaofs 2020. 5. 29. 06:06

부활 시기가 무르익어가면서 말씀이 성령 강림 대축일을 향해 한 방향으로 흐르다가, 오늘은 잠시 주제를 달리 합니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며 나를 따라야 한다"(요한 12,26).

섬김은 본시 종의 몫이었습니다. 고대 신분 사회에서 종의 처지는 그저 소유자인 주인을 섬기고 그의 뜻에 따라 그가 원하는 걸 하는 재산의 일부분이었지요. 그러니 신분적 종에게 있어 섬김은 강제적 성격이 컸겠지요.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마태 20,28)

그런데 예수님은 친히 종의 자리로 이 세상에 오셨음을 천명하셨지요. 이 선택에는 여느 종들에게 부여된 것 같은 세습적 강제성이 없습니다. 이로써 예수님은 섬김의 패러다임을 바꾸신 것이지요.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며 나를 따라야 한다."

무엇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예수님은 섬김과 따름을 직결시키셨다는 점입니다. 신분적으로 종이라 불리는 이들은 주인을 섬길망정 엄밀히 말해 따를 필요는 없었습니다. 주인이 원하는 바를 충족시켜 주면 되지, 굳이 주인의 언행이나 가르침, 모범을 따르거나 닮으려 애쓸 이유는 없었지요.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을 따름으로써 섬깁니다. 섬김과 따름이 별개의 태도가 아니라는 뜻이지요. 주님을 섬기는 우리는 그분이 하신 대로,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 주님의 길을 따라가는 제자들입니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요한 12,26).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섬김은 함께 함, 동반, 함께 머무름입니다. 예수님은, 한 편은 일방적으로 봉사하고 또 한 편은 받기만 하는 걸 섬김으로 보지 않으시지요. 섬기는 이는 주인이 있는 곳, 길바닥이든, 성전이든, 십자가 위든, 무덤 속이든, 천상 혼인잔치든, 거기가 어디든 함께 있는 존재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요한 12,26).

예수님을 섬기는 것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아버지에게까지 연결됩니다. "존중"! 어쩌면 신분 제도 계급 사회의 모든 종들이 간절히 바라던 가치가 아니었을까요? 자청해 종의 자리로 내려가 섬기는 이에게 아버지는 "존중"이라는 선물을 주십니다. "존중"은 그저 사람을 대하는 외적 테크닉이 아니라 그 존재 전체에 대한 인정과 수용, 존경을 포함하는 전인적 표현입니다.

그런데 지금이 계급 사회도 아니고, 자청해 주님의 종으로 산다는 것은 그리 녹록치 않습니다. 더 주님께 가까이 가려는 영혼에게는 악의 유혹과 어둠의 힘이 더 기승을 부리게 마련이니까요.

제1독서는 악에 대한 그리스도의 승리를 노래하는 요한 묵시록의 대목입니다.

"우리 형제들은 어린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 그 자를 이겨냈다"(묵시 12,11).

주님을 섬기는데 목숨을 바친 이들은 썩은 밀알이 되어 새 생명을 틔웁니다. 주님은 이들에게 당신과 함께 있는 영예를 주시지요.

실제로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름으로써 주님의 증언자가 된 이들의 승리는 세속적 육적 승리가 아닙니다. 어쩌면 세상 눈으로는 몽상가에 불과한 실패자일 뿐이지요.

어둠의 권세, 유혹과 죄악의 굴레를 쳐부순 이들의 승리는 비록 목숨은 잃었지만 끝까지 신앙과 사랑을 지킨 승리, 한 목숨으로 무수한 생명을 구한 승리입니다.

그런데 그들을 승리로 이끈 도구가 무엇인지 주목해 봅시다. 바로 "어린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이지요. 결국 우리가 악에게 승리할 수 있는 힘은 주님의 희생제사와 그분 말씀입니다.

순교, 희생, 죽음... 이런 말씀들 앞에서 작아지는 것은 우리만이 아니라 이천 년 전, 성령을 받기 전에 주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죽음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고 함께 하고 닮으려다 보니 가게 된 길이지요. 죽음을 위한 죽음이 아닌 생명을 위한 죽음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그러니 미리 겁 먹고 움츠러들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들처럼 우리도 주님을 사랑하고 섬기고, 헌신하며 나아가는 동안, 미사성제와 말씀으로 정화되고 성화되고 굳세어져 주님과 함께 승리의 잔을 마시게 될 것이니까요. 오늘 하루 우리가 엮어가는 일상이 바로 그 여정 안의 한 걸음입니다.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이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