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미사의 말씀에서도 아름다운 고별사가 이어집니다.
먼저 복음 속 예수님의 기도에 머무릅니다. 아버지께 제자들을 위해 청하시는 하나 하나가 얼마나 사려 깊고 자애 넘치는지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느껴집니다.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요한 17,11).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위해 아버지께 청하시는 것 중 하나는 하나됨입니다. 이 하나됨의 모델은 성부, 성자, 성령이신 성삼위 하느님의 하나됨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당신들처럼 성삼위 하느님과 하나 되고, 그로써 이웃, 형제, 자매, 모든 피조물과 하나됨을 누리기를 기도하십니다.
통치의 편리를 위한 획일화가 아니라, 가장 고귀하고 소중한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성삼위 안에서 당신이 더할 나위 없이 좋고 행복하시니 나누시고 참여시키시려는 것이지요.
"이들을 악에서 지켜 주십사고 빕니다"(요한 17,16).
제자들을 위한 예수님의 또 다른 기도는 악으로부터 보호입니다. 우리가 늘 바치는 주님의 기도 마지막 청원과 일맥상통하지요.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세상에 속하지 않는 제자들은 어둠의 세력이나 악의 권세에 노출되어 미움을 받을 것입니다.
세상을 살아가지만 세상의 우상숭배에 편승하지 않는 이를 세상은 이물질처럼 불편해하며 밀어내려 하고 제거하려 들기 마련이니 아버지의 보호가 절실합니다.
"이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입니다"(요한 17,17).
예수님의 세 번째 바람은 제자들의 성화입니다. 거룩함! 이는 하느님의 속성이고, 그분 모상인 우리의 가능성이며, 본 모습이지요.
세상 순례길에서 죄와 약함에 물들어 잠시 잃기도 하고 퇴색될 수도 있지만 얼마든지 회복이 가능하지요. 바로 진리가, 곧 말씀께서 거룩하게 해 주시는 명약이니까요.
말씀께서 거룩하게 해 주십니다. 우리가 비록 성경 전문가나 석학이 아니어도 매일 말씀을 만나 머무르고 품고 되뇌이면서 사랑하는 동안 가랑비에 옷 젖듯 우리 영혼은 거룩해집니다.
지식이 아니라 진리가, 소리가 아니라 말씀이, 숫자가 아니라 사랑이 우리를 성화합니다.
제1독서에서는 에페소 원로들을 향한 사도 바오로의 고별사가 이어집니다.
"삼 년 동안 밤낮 쉬지 않고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눈물로 타이른 것"(사도 20,31)
이는 공치사가 아니라 실제 바오로의 선교 태도 그대로이고, 또 우리 예수님이 제자들을 가르치시던 모습이기도 하지요. 제자들은 이렇게 스승의 눈물과 한숨, 헌신을 먹고 성장합니다.
"이제 나는 하느님과 그분 은총의 말씀에 여러분을 맡깁니다"(사도 20,32).
그들 곁에 계속 머물러 있을 수만은 없는 바오로는 그들을 하느님과 말씀에 맡겨드립니다. 말씀은 뒤에 남겨질 신생 교회 공동체에게 바오로를 대신해 등대도 되고 이정표도 되고 정화의 물, 성화의 불길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진리를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이론에서 찾는 것은 흐르는 물을 움켜 쥐듯 속절 없는 일입니다. 누가 진리를 맛보았다면, 그건 그가 배워서라기보다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진리는 사랑하는 이에게 자신을 드러내기 마련이니까요.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우리는 진리에서 멀리 있지 않습니다. 말씀이 늘 우리 곁에, 우리 안에, 우리 입술과 마음에 있으니까요. 그러니 진리이신 말씀께서 우리를 정화하시도록 내어맡깁시다. 우리는 진리로, 말씀으로 거룩해질 것입니다. 아멘.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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