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0년 7월 10일 연중 제14주간 금요일

dariaofs 2020. 7. 10. 05:44

오늘 미사의 말씀은 우리에게 지혜와 분별을 촉구합니다.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마태 10,16).

예수님께서 사도들 파견에 앞서 솔직한 심경을 표현하십니다. 이리떼 속으로 가는 양이라니요, 얼마나 무서운 상황입니까!

실제로 예수님은 의회에 넘겨짐, 채찍질, 미움, 박해 등등 사도들 앞길에 지뢰처럼 묻혀 있을 난관과 어려움들을 구체적으로 나열하십니다. 아무래도 복음 선포의 길이 장밋빛만은 아닐 듯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미리 알려 주시지요.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마태 10,16).

성경에서는 뱀이 그다지 긍정적 이미지는 아닙니다만, 적어도 지력은 지니고 있습니다. 그 머리를 타인을 유혹하고 속이는 잔꾀로 쓸 때는 형벌 감이지만, 주님의 뜻을 헤아리는 슬기로 작동한다면 완전히 다른 결과를 낳겠지요. 실제로 광야의 구리뱀은 이스라엘에게 구원의 이미지로 등장합니다(민수 21,9).

비둘기는 노아에게 싱싱한 올리브 잎을 물어다 주어 세상에 물이 빠졌음을 알려준 새로 유명하지요. 그런데 오늘 말씀께서는 제게 아가의 비둘기를 떠올려 주셨습니다.

"바위틈에 있는 나의 비둘기
벼랑 속에 있는 나의 비둘기여
그대의 모습을 보게 해 주오
그대의 목소리를 듣게 해 주오
그대의 목소리는 달콤하고
그대의 모습은 어여쁘다오."
(아가 2,14)


아가에서 비둘기는 연인(주님)이 사랑하는 여인을 불러낼 때 부르는 애칭입니다. 비둘기라 불리운 그 여인은 불타는 사랑으로 연인(주님)을 갈망하다가, 또 사랑이 주는 두려움에 움츠리며 바위틈에 몸을 숨기기도 합니다. 사랑의 두려움과 열정 사이에서 연인을 응시하며 귀를 기울이는 비둘기는 순수와 정결을 상징하지요.

복음 속 사도들에게 요구되는 뱀의 슬기와 비둘기의 순박함은, 첫째, 아버지의 영께 의탁하고 걱정하지 말 것(마태 10,19-20 참조), 둘째, 끝까지 견디어 구원을 받을 것(마태 10,22), 셋째, 박해하는 이에게 맞서거나 보복하지 말고 피할 것(마태 10,23 참조)입니다.

구원은 온전히 아버지의 일이니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고, 미움이나 분쟁에도 휘말리지 말고, 인내와 의탁으로 복음 선포의 소명을 수행하라는 뜻이 아닐까 합니다.

제1독서는 호세아 예언서의 끝부분으로 본문 안에 내내 토해지던 격렬하고 뜨거운 사랑과 분노의 언어들이 질서를 찾으며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당신뿐이십니다"(호세 14,4).

주님 사랑에 등 돌리던 이스라엘이 긴 배반의 시간을 끝내고 주님 앞에 돌아와 뉘우치며 고백합니다. 그들은 먼저 "황소가 아니라 입술을 바치겠다"고, 형식이 아닌 마음으로 제사를 바치겠다고 약속합니다. 이어 주님 대신 믿고 의지했던 "아시리아"가 자기들을 구원할 수 없음을 비로소 인정합니다. 마지막으로 "저희 손으로 만든 것" 즉 우상을 섬기지 않겠다고 다짐하지요.

"이제 내가 반역만 꾀하는 그들의 마음을 고쳐 주고 기꺼이 그들을 사랑해 주리라"(호세 14,5).

이에 주님은 기다리셨다는 듯, 성경을 읽는 이들도 놀랄 만큼 다정하고 따사로운 어조로 당장 사랑의 회복을 선언하십니다. 나리꽃, 아름다움, 올리브 나무, 레바논의 향기, 곡식 농사, 포도나무, 포도주, 방백나무, 열매... 주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축복의 단어들이 얼마나 아름답고 풍요롭고 자애로운지요...

"지혜로운 사람은 이를 깨닫고 분별 있는 사람은 이를 알아라"(호세 14,10).

사랑의 배신과 진노, 경고와 징벌, 회개와 회복, 그리고 다시 사랑. 신랑이신 하느님과 신부인 백성 사이에서 이 모든 현실들이 숨가쁘게 오가고 난 뒤, 주님께서 지혜와 분별을 말씀하십니다.

이렇듯, 파란만장한 사랑의 굴곡을 거친 뒤 마음속에서 솟아나는 지혜란, 우리의 구원이 사람의 힘이나 우상에게 있지 않고 오직 주님께 달렸음에 대한 깨달음이 아닐까요. 또 사랑의 대상을 정확히 분별해 그분께 자신을 온전히 의탁하는 순박함이 아닐까요.

사랑하는 벗님! 지혜와 분별 안에서, 슬기롭고 순박하게 주님을 열렬히 사랑하고 섬기는 오늘 되시길 축원합니다. 그분만이 우리 구원이시고 사랑이시며 전부이십니다. 아멘.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