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미사의 말씀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두 갈래로 듣습니다.
제1독서에서는 거듭되는 백성의 배반에 대한 주님의 탄식과 연민입니다.
"내가 그들에게 나의 가르침을 많이 써 주었지만 그들은 그것을 낯선 것으로만 여겼다"(호세 8,12).
사랑을 쏟아 주신 당신 백성에게서 소외되신 주님의 외로움이 읽힙니다. 주님이 백성에게 주신 율법과 계명은 사랑이지요. 하지만 받는 쪽에서 사랑을 읽어내지 못하면 과중한 의무나 형식적 의례일 뿐입니다.
"그들은 희생 제물을 좋아하여 그것을 바치고 그 고기를 먹지만 주님은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호세 8,13).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께 적당히 형식적인 의무를 이행하면서, 제 손으로 만든 우상들에게는 사랑을 바쳤습니다. 율법이 정한 대로 때 맞춰 주님께 무언가를 드리기는 하나 그건 제 편의일 뿐,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았지요. 주님은 신부인 백성에게서 진정성 어린 사랑을 받고 싶으셨지만 그들은 영혼 없는 의무감으로 서늘하게 맴돌았습니다. 주님은 점점 이스라엘 백성에게 낯선 분이 되어 버립니다.
"이제 주님은 그들의 잘못을 기억하고 그들의 죄를 벌하리니 그들은 이집트로 돌아가야 하리라"(호세 8,13).
주님의 입에서 참 아픈 말씀이 나오고 맙니다. 손수 이집트에서 끌어 내어 계약을 맺으신 백성이 다시 이집트로 돌아가야 한다니요! 하지만 이 말씀은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이집트의 노예로 다시 몰아넣으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집트는 장소 개념을 넘어 종살이를 의미합니다. 노예 상태에서 해방시켜준 백성이 주님을 저버리고 우상에게 스스로를 묶었으니, 이미 그들은 스스로 종이 되는 길을 다시 택한 것입니다. 하느님 외에 인생의 목표로 추구하는 것들, 이를테면 재물, 명예, 외모, 학벌, 성과, 자기애 등등이 오히려 가혹한 주인이 되어 우리에게 족쇄를 채우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복음의 대목은 짧지만 다양한 이야기가 집약되어 있습니다. 말못하는 이의 치유와 그에 대한 두 부류의 상반된 반응이 나오고, 이어서 예수님의 복음 선포 활동이 전개되지요. 끝으로 복음 선포를 위해 제자들이 아버지께 청해야 할 바를 일러주시는 것으로 숨가쁜 행적이 마무리됩니다.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마태 9,36).
예수님이 하시는 모든 행적의 동기이고 출발점입니다 당신 백성에게 느끼시는 아버지의 한없는 연민과 측은지심이 아드님에게서도 그대로 흘러나오고 있지요. 제 스스로 우상 밑에 몸을 던져 자발적으로 종이 된 자녀들을 바라보는 애끓는 안타까움입니다. 그분은 이 연민에 가려 당신이 보이시는 기적에 대한 반응이 어떻든 개의치 않으십니다. 그저 이 세상에서 당신이 하셔야 할 사명에 몰두해 성큼성큼 나아가십니다.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마태 9,38).
예수님은 당신의 일에 제자들을 초대하십니다. 직접적인 복음 선포자로서 파견(마태 10,1-11,1)하시기 전에 기도를 명하시면서, 청원의 내용 또한 일러 주십니다.
"일꾼"
그런데 그 일꾼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존재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노예 상태에서 해방된 이가 일꾼으로 불리움 받는 겁니다. 스스로를 묶었던 족쇄에서 벗어나 말씀을 듣게 되고, 진실을 말하게 되고, 진리와 정의에 올바르게 반응하게 되고, 여전히 억눌려 신음하는 이들을 연민하게 되고, 부족하나마 그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려 애쓰는 일꾼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의 은총을 입은 말못하던 이처럼,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는 제자들처럼, 부족하나마 주님의 도구로 살아가는 우리처럼 말입니다.
슬프게도 오늘의 이야기 안에서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마귀 우두머리와 엮어 악으로 규정함으로써, 스스로를 율법에 묶어 노예로 남기를 자청합니다. 자기들이 추구하는 냉정하고 규격화된 율법의 온도에 비해 예수님의 사랑과 기적이 너무 뜨겁고 열렬하고 정스러워서 그랬을까요...
사랑하는 벗님! 우리는 누구나 주님 안에 자유인이면서 동시에 영혼 곳곳에 노예 상태 때의 생채기를 지니고 살아갑니다. 나의 생각과 의지, 꿈과 이상, 가치관과 선택을 끌어가는 힘 안에 무엇이 작용하는지 돌아보는 하루 되시면 좋겠습니다.
늘 주님께서 연민의 눈길로 바라보는 애잔한 자녀들이고, 또 주님의 명으로 제자들이 아버지께 청원하여 보내어진 일꾼들인 여러분 모두를 축복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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