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인 첫 사제이신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을 기리는 날입니다. 오늘 미사의 말씀은 우리에게 "때문에"와 "덕분에"에 대해 묻습니다.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마태 10,18).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의 미움을 받을 것이다"(마태 10,22).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제자의 앞날을 솔직히 밝히십니다 설교하고 치유해 주면서 환호받는 꽃길만 있지 않다는 걸 명백히 하시는 겁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모든 예언자의 운명이었고 예수님 앞에 펼쳐진 길이기도 하지요. 이제 제자들도 그 운명으로 초대받고 있습니다.
"나 때문에, 내 이름 때문에."
주님과의 신의를 저버리지 않으려 기꺼이 죽음을 택한 예언자들과 순교자들은 세속의 눈으로 보면 몽상가고 실패자입니다. 세상 사람들 입장에서야 배우고 벌고 희생하고 즐기는 모든 일이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신앙과 사랑을 위해 죽자고 나선 모습이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요.
이처럼 세속의 견지에서 허망한 패배가, 믿는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모상으로서, 제2의 그리스도로서 받은 특권입니다. 세상 눈에는 "때문에"지만 우리 마음에는 "덕분에"인 것이지요.
제1독서에서는 즈카르야 예언자의 죽음을 보여 줍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을 당신께 돌아오게 하시려고 그들에게 예언자들을 보내셨다"(2역대 24,19).
예언자는 경보음과 같습니다. 길을 잘못 들어서거나 방향을 잃었을 때 제 자리로 돌아가라는 신호의 역할이지요. 주님은 당신 백성이 당신에게서 멀어지거나 등지려 할 때 그들을 돌려세우기 위해 예언자들을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거슬러 음모를 꾸미고 ... 주님의 집 뜰에서 돌을 던져 죽였다"(2역대 24,21).
다른 우상들과 사랑에 빠져 한창 풍요와 쾌락에 몰두한 이들에게 주님의 계약과 신의를 일깨우는 예언자가 고울 리 없겠지요. 결국 즈카르야 예언자도 여느 예언자들과 같은 죽음을 겪습니다. 정의나 진리에 귀를 닫은 이들에게는 주님의 말씀보다 폭력이 더 쉽고 가깝기 아련이지요.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이런 우리의 운명을 "덕분에"로 표현합니다.
"믿음 덕분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가 서 있는 이 은총 속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로마 5,2).
바오로는 하느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과 우리가 겪을 환난을 동급으로 봅니다. 둘 중 하나는 취하고 하나는 피하는 것이 아니라 둘 다 자랑합니다. 주님과 운명을 같이하는 일치의 길에서는 둘 다 중요하고 가치있고 고귀하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영광스럽게 기리는 예언자들, 순교자들, 성인들은 신앙의 길에서 맞닥뜨린 모든 환난을 "주님 덕분에"로 승화시킨 분들이지요. 오늘 우리가 경축하는 김대건 신부님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더 당당히 거리낌없이 오히려 기뻐하며 그 고난을 겪어내고 증거자의 길을 가셨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우리에게 직접적인 순교를 요구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오히려 더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증거의 갈림길을 매순간 접합니다. 세상은 풍요와 쾌락의 패를 보여주며 자기를 따르라고 속삭이는데, 우리는 예수님을 닮겠다고 진리와 정의, 양보와 희생, 나눔과 베품, 비움과 가난의 길을 기웃거리지요. 썩 잘 하지도 못 한다는 부끄러움을 안고서 그래도 애를 씁니다.
이런 우리 모습에 세상은 "때문에"라며 혀를 끌끌 찰 겁니다. 그러길래 자기 쪽으로 더 확실히 오지 그랬냐고 채근하면서요. 하지만 우리는 "덕분에"라고 기뻐합니다. 우리가 "주님 덕분에" 선택한 이 삶이 비록 세상이 좇는 풍요와 쾌락을 보장하진 않지만, 괜찮습니다. 우리는 "하느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과 그 과정에서 겪는 "환난"을 함께 자랑하는 순교자들의 후예니까요.
오늘의 나의 모습, 나의 자리, 나의 처지를 원망하고 후회합니까, 아니면 충만하고 감사합니까? "주님 때문에"입니까, 아니면 "주님 덕분에"입니까?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과 함께 우리가 들어선 제자의 길을 깊이 숙고하는 오늘 되시길 기도합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아멘.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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