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0년 7월 2일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dariaofs 2020. 7. 2. 05:33

오늘 미사의 말씀은 "권한"에 대해 물으십니다.

"얘야 용기를 내어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마태 9,2).

중풍 병자에게 예수님께서 건네신 이 말씀에 머무릅니다. 얼마나 다정하고 자애가 넘치는표현인지요. 지인들에 들려 예수님 앞까지 오는 동안 가졌던 미안하고 불안한 마음이 단박에 녹은 듯 사라집니다. 혹시나 하면서 가져보았던 기대가 현실이 된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질병이나 장애를 죄에 대한 하느님의 징벌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아픈 이들은 육신이 힘든 것 이상으로 두려움과 죄의식 속에 눈치까지 보아야 했지요.

그러니 예수님의 이 말씀은 육신의 고통만이 아니라 마음의 상처와 영혼의 불안까지 치유해 주시는 사랑의 표현입니다. 전인적인 회복은 또 다른 창조입니다.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마태 9,6).

죄와 용서에 대한 권한을 철저히 하느님의 것으로 유보해온 율법 학자들은 이 말씀이 못마땅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불편한 속내를 아시고 정면으로 이르시지요.

사법 제도가 발달하면서 심판과 징벌, 용서의 권한을 일정한 자격을 갖춘 이들과 법 질서에 맡깁니다. 하지만 진짜 용서는, 지은 죄로 인해 직접 피해를 입은 이에게 청해야 하는 게 맞지요. 용서의 권한은 죄악의 공격에 처절히 희생된 이가 베풀 수도 있고 거부할 수도 있는 권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용서의 권한을 쥐고 계십니다. 그분은 모든 인간의 죄를 대신해 희생 제물이 되신 분이시니까요.

제1독서는 베텔의 사제 아마츠야와 아모스 예언자 사이의 갈등을 다룹니다.

"이 나라는 그가 하는 모든 말을 더 이상 참아 낼 수가 없습니다"(아모 7,10).

북 이스라엘 왕국의 사제인 아마츠야는 남 왕국 유다 출신의 아모스와 그의 예언이 못마땅합니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 닥쳐오는 아시리아의 칼날을 정작 북 이스라엘의 예언자들보다 아모스에게 드러내셨기 때문입니다.

"다시는 베텔에서 예언을 하지 마라. 이곳은 임금님의 성소이고 왕국의 성전이다"(아모 7,13).

그런데 아마츠야가 놓치는 것이 있습니다. 그가 명색이 하느님의 사제라면, 베텔은 임금님의 성소에 앞서 하느님의 성소여야 하고, 왕국의 성전보다 하느님의 성전이어야 하지요. 그러니 하느님 기준의 시각을 잃어버린 그에게 아모스가 하느님에게서 받아 전하는 예언이 인간적 음모 정도로밖에 들리지 않았나 봅니다.

"나는 예언자도 아니고 예언자의 제자도 아니다. 나는 그저 가축을 키우고 돌무화과나무를 가꾸는 사람이다. 그런데 주님께서 양 떼를 몰고 가는 나를 붙잡으셨다"(아모 7,14-15).

아모스가 솔직히 고백합니다. 그는 자신이 북 왕국 이스라엘 출신도, 번듯한 예언자 계보도 아님을 숨기지 않습니다. 소속과 계보로 사람을 판단하는 이들에게 이런 존재는 참 불편할 겁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양 떼를 몰고 가는 나를 붙잡으셨다."

하지만 아모스의 권한이 오히려 더 진정성 있습니다. 서류나 계보에 의존하지 않고 하느님 선택에 근거하기 때문이지요. 또 하느님께서 직접 그에게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언자의 자격은 제복이나 증명서에 있지 않고 하느님과의 친교와 소통, 즉 관계성이 보증하지요.

"그러자 그는 일어나 집으로 갔다. 이 일을 보고 군중은 두려워하며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마태 9,7-8).

복음 속 중풍 병자는 치유를 받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는 육신의 치유로도 기뻤을 터이고, 거기에 더해 죄의 굴레에서 해방을 선언 받은 것이 무엇보다 행복하고 감사했을 겁니다.

군중은 이제 그러한 권한이 누구를 통해서건 하느님에게서 온다는 것을 명확히 체험합니다. 용서의 권한, 사랑의 권한은 두꺼운 율법서나 학자들 머릿속의 죽은 문자로 박제되어 있지 않고, 진정 죽음까지 불사하기에 용서와 사랑의 권한을 지니신 분을 통해 펄펄 살아 움직이는 실체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모든 죄는 그것이 인간 사이나 피조물간에 벌어진다 해도 하느님을 향합니다. 그래서 하느님 마음에는 상처가 아물 날이 없으시지요. 용서는 이 상처에서 솟아나는 피로 새 계약을, 새 창조를 이루시는 분의 권한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예수님과 함께 자신과 이웃, 세상을 향해 치유와 용서의 축복을 건네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사랑하고 있다면 그럴 권한이 있답니다.

"얘야 용기를 내어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마태 9,2). 벗님에게 주시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아멘.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